신랑은 외국인 신분의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나와 결혼했을 당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메디케어 같은 정부 지원 보험제도에 가입할 만큼 빈곤하지는 않으나 다달이 값비싼 의료비를 낼 만큼의 경제적 여건은 되지 않은 젊은 이민자들은 대부분 무보험 상태로 지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우리의 첫 보험
나의 지병 때문에라도, 우리의 임신 계획 때문에라도 우리는 한시 빨리 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미국에서 직장인이 보험에 가입하려면 직장에서 지원하는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지원되는 비율은 저마다 다른데 신랑 회사에서 지원하는 보험은 50 대 50이었다.
우리가 매 달 내야 하는 보험은 보장 범위에 따라 대략 700달러부터 900달러까지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출산 때 의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일단 가장 높은 옵션을 선택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출산할 때 의료비가 수만 달러나 청구된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은 뒤였다.
보험 약관은 굉장히 복잡했다. 아웃 오브 포킷(out of pocket), 디덕터블(deductible) 등 이제는 익숙해진 낯선 용어를 검색해 가며 읽었지만 영어로 읽어도, 번역된 글로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시스템을 내 머리는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명색이 번역가인데 이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냥 한국처럼 단순하게 할 수 없나?’
수치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복잡한 의료 시스템을 원망하다가 언젠가 이해가 되는 날이 오겠지, 하며 일단 접어두었다. 사실 그걸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과연 우리가 다달이 900달러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당시 신랑의 한 달 월급은 세후 3,000달러 정도였는데 월세는 1,500달러였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나머지 600달러로 생활하기란 불가능했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당시에는 나의 한국 돈을 미국으로 계좌 이체하는 법도 몰랐고 그렇게 할 만큼 내 벌이가 충분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곳에서의 생활은 늘 마이너스였다. 다행히 값비싼 보험료를 지불한 덕에 출산 때 별도로 지불한 비용은 없었다. 이 또한 보험별로 상이하기에 누구는 매 달 보험료를 내고도 출산 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가족 플랜으로 갈아타다
첫째 아이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황달로 병원에 이틀 동안 입원했다. 아직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의사의 권유로 말도 안 되는 양의 모유를 짜서 신랑 편에 보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그걸 달게 먹었다는 말에 울컥 아이가 보고 싶었지만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솔직히 몸은 편했다. 비싼 의료보험 덕분인지 입원비는 대부분 커버되었다.
가장 높은 단계의 의료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 가장 낮은 단계로 바꿔야 했다. 200달러 정도를 절약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족 플랜으로 바꿔야 했고, 절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200달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만 잠시 존재하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고마워 Child Health Plus!
둘째까지 낳은 뒤에도 가족 플랜을 몇 년째 유지하고 있던 중, 지인을 통해 뉴욕 시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아동 의료보험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만 18세까지 모든 의료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에 제공받을 수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두 아이를 우리 보험에서 빼 이 서비스에 가입시킬 경우 150달러 정도는 절약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하여 두 아이는 현재 뉴욕 시 건강 보험인 Child Health Plus에 가입되어 있고 우리 부부만 회사에서 지원하지만 내 돈도 그만큼 내야 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어떤 회사는 90퍼센트까지도 지원한다고 하는데, 신랑에게 그런 회사를 찾아보라고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 사는 한 언제까지고 고민하게 될 문제다. 나처럼 프리랜서로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보험료를 감당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살기 위해 확보되어야 하는 가장 큰 조건이 신분 보장이라면 두 번째는 보험이다. 없이 살아도 괜찮은 젊은 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까지고 무보험으로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없이 살아도 괜찮은 시절은 사실 없다. 언제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므로.
* 미국 의료보험 기본 용어
-프리미엄(premium): 매달 내야 하는 의료보험비
-디덕터블(deductible): 보험회사가 의료비를 지불하기 전에 가입자가 매년 먼저 내야 하는 고정 금액. 일단 가입자가 디덕터블을 채우고 나면 나머지 의료비용은 보험회사가 전액을 내거나 가입자와 나눠서 내게 된다.
-코페이(co-pay): 의사나 의료 시설을 찾을 때, 다시 말해 보험을 사용할 때마다 내야 하는 비용으로 10달러에서 40달러에 이른다.
-아웃 오브 포킷(out of pocket): 본인 부담 비용
-아웃 오브 포킷 맥시멈(out of pocket maximum): 환자가 부담하는 최대 금액.
미국의 의료비 파산율이 한국보다 낮은 이유는 아웃 오브 포킷 맥시멈 때문이다. 본인 부담금이 계속 늘어나다가 한도에 도달하면 그다음부터 발생하는 병원비는 보험회사에서 전액 커버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out of pocket maximum이 3,000달러일 경우 암에 걸려 몇 차례 수술을 받더라도 연간 3,000달러만 내면 된다. 물론 다큐멘터리 <식코>에 등장하는 사례처럼 보험 회사에서 보험 혜택을 거절하면서 치료 거부가 아니라 지급 거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