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수술받으시죠?

by 물고기자리

첫째와 둘째 사이에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있다. 계획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첫째와 두 살 터울로 둘째를 계획했더랬다. 그때만 해도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될 줄 알았다. 한국인 의사를 굳이 찾지는 않았다. 영어가 완벽해서라기보다는 어차피 이 사회에 뿌리내릴 거라면 익숙한 것에서 하나씩 벗어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첫째를 임신한 뒤 다급히 보험에 가입한 터라 의사를 찾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임신 10주에 접어든 상태였다. 의사들은 초진 환자를 받지 않으려 했다. 알고 보니 new patient를 받지 않는 의사가 꽤 있었다. 전화기 너머 그들은 초진 환자인지 먼저 물었고 무언가를 꺼리는 듯한 말투로 당당하게 거부 의사를 표했다. 예약을 잡고 찾아 간 맨해튼 병원에서 감기 바이러스만 받아온 날, 아무 의사나 날 좀 받아주면 감사하겠다 싶었다.


미국 의료는 병원이 아니라 의사를 찾아가는 시스템이다. 내가 가진 보험을 받는(in network) 의사를 인터넷에서 찾아 그들의 개인 오피스에 찾아가야 한다(out of network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가는 진료비 폭탄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임산부가 한 곳에서 관련 검사를 전부 받을 수 없다. 초음파를 받아야 할 때면 대형 병원에 가야 했고 당뇨 검사를 받을 때에는 전혀 다른 클리닉을 찾아야 했다. 출산은 당연히 대형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줄자로 배의 둘레를 재는 자그마한 진료실의 진찰대에 누운 채 둘째 아이가 되었을 수도 있는 태아의 심장이 멈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혼자였다.


“아기 심장이 안 뛴다네.”


진료실에서 나와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에는 소파 수술 관련 서류가 들려 있었다. 내가 직접 전화해서 예약해야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모든 것이 한 병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텐데. 처음으로 한국 병원을 떠올렸다. 그 매끄러운 절차가, 편리함이 그리웠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2월 21일, 1982년이요.”


“오늘 무슨 수술을 받으시죠?”


“소파 수술(D&C)이요.”


접수대에서, 수술 직전, 마취 직전 같은 질문을 열 번 넘게 반복했다. 소파 수술이라는 단어에 무감해졌다. 언어는 반복이다.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들기 위해 다섯 번 이상 중얼중얼 소리 내어 영어공부를 하곤 했는데. D&C라는 단어는 그렇게 내가 툭 하고 치면 톡 하고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단어가 내 머릿속 사전에 등재되는 순간, 직업병 탓인지, 새로운 단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살짝 뿌듯했다.


수술은 출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지 멀쩡한 나였지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굳이 침대에 누운 상태로 수술실로 옮겨졌다는 것, 수술실이 너무 추웠다는 것, 마취에서 깨어난 뒤 한참을 횡설수설했던 것만 기억한다. 혼미한 상태에서도 영어로 중얼거려야 한다는 의식만은 또렷했다. 한국말 좀 한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닌데. 근데 뭐라고 중얼거렸을까. 부끄러워서 신랑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첫째 아이는 알고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에게 맡겨두었다. 그 친구라도 사귀어둬서 다행이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졌다. 엄마와 떨어져 지낸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였다. 엄마가 어디 갔는지, 아빠마저 어디 갔는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다행히 친구가 보내온 사진 속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우는 모습을 찍지는 않았겠지 싶으면서도 그 모습을 보자 위안이 되었다.


집에 와서 남편이 미리 끓여둔 미역국을 먹었다. 근처에 사는 한국 친구가 잡채를 해다 줘서 고맙게 먹기도 했다. 잡채에 뜨끈한 미역국을 후루룩 넘기는 내 몸은 지나치게 한국적이었다. 그 아이러니함이 웃겼고 내 옆에서 호호 불어가며 미역국을 받아먹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내가 선택한 미국적인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우리의 존재 자체만큼 한국적인 것도 없는데.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미국적인 것만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1년 반이 지나고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 아이와는 세 살 터울이었다. 병원비는 보험료로 대부분 커버되었다. 소파수술 비용이 4천 달러에서 7천 달러까지 든다고 하던데 천만다행이었다.



* 미국 병원에는 수납이라는 절차가 없다. 30달러 정도 되는 코페이를 먼저 지불하는 경우도 있으나 나중에 청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대형 병원에서 피를 뽑기 전에 무조건 수납부터 하고 오라고 했기에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 가장 아리송한 부분이었다. 진료와 수납이 분리된 시스템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 자리에서 돈 얘기가 오가지 않으니 좋았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엄청난 진료비와 약값을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긁고 나올 때의 처참한 기분을 너무 잘 알기에.

이곳에서 진료 청구비는 보통 한 달 후에 우편으로 날아온다. 병원이 제시한 병원비를 환자의 보험회사에서 분석하고 검토하기에 시간이 소요되는 것. 보통 보험회사에서 상당 부분을 커버하고 나머지 부분을 환자에게 청구하는데 개인이 가입한 보험의 종류에 따라 커버되는 비용이 다르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등장하는 출산 비용 5만 달러 중 실제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보험에 가입해 있다면) 몇 천 달러 혹은 그 이하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 06화She’s my favorite pati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