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통은 굉장했다. 자연적인 요법으로 출산하니 회복도 빠르고 고통도 덜 하다며 좋아하기가 무섭게 무지막지한 고통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쳤다. 찾아보니 둘째 때의 산후통이 훨씬 더 심하다고 했다.
참고로 미국에는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로 설명되는 굴욕 3종 세트가 없다. 제모야 그렇다 쳐도 관장을 안 하면...
‘애 낳다 똥 쌀 수도 있지 않나? 힘을 그렇게 주는데, 나올 생각 없던 똥도 나오지 않겠나.’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의사는 진통제가 신진대사 작용을 느리게 해 준다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해주었다. 실제로 두 번의 출산 과정 중 실수를 한 적은 없다.
회음부 절개는 조금 얘기가 다른데 여기에는 서양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머리가 크다. 따라서 동양인 아기도 서양인 아기보다 머리가 크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엄마의 회음부가 찢어지는 경우가 없다. 반면 동양인 엄마들은 100퍼센트 회음부가 찢어진다.
한국에서는 동양인 엄마가 대부분이니 아이를 낳기 전에 이 부위를 십자 형태로 자르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조치다. 그래서 동양인 엄마들의 회음부는 마구잡이로 터지고 회복도 더디다. 유난한 산모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무제모, 무관장, 무회음부 절개를 받아들였고 이번에도 회음부 절개의 뒤늦은 고통을 고스란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
진통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정작 생각도 못한 문제가 닥쳤다. 오줌이 나오질 않았다. 처음에는 신랑과 엄마가 함께 있는 병실에서 누운 채로 오줌통에 오줌을 눠야 해서 나오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방광이, 정확히 말하면 근처 근육이 문제였다. 오줌은 마려운데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수시로 들어와 점검했다.
“아직 소변 못 보셨나요?”
“네... 안 나오네요.”
몇 시간 전 회복실로 옮기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곧바로 휘청였던 기억이 났다. 왼쪽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누워만 있을 때에는 전혀 몰랐다. 당황한 간호사는 안 되겠다며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해 침대 채로 옮기자고 했다. 회복실에 누워 있으니 다양한 선생님들이 들어와 내 다리를 두드려보고 찔러봤다.
“감각이 있나요?”
“아니요.”
“여기는요?”
“안 느껴져요.”
의사들은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아무래도 마취가 덜 풀린 거 같다고 했다.
무통 마취제가 들어가는 장치가 고장 난 뒤 들이부은 마취제 때문에 내 왼쪽 다리와 허리께까지는 여전히 무감각의 세계를 헤매고 있었다. 방광 근처 근육도 그 여파로 마비되었는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사실은 힘을 줄 수도 없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도 안 돌아오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이거 의료 사고 아닌가, 이걸로 돈 엄청 뜯어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엉뚱한 생각과 평생 마비된 다리로 살고 싶지 않다고, 돈 안 받아도 되니 제발 내 다리를 원래대로 돌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오가던 중 다리는 다행히 서서히 감각을 되찾아갔다. 감각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한동안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감각한 상태로 아이를 돌보는 바람에 결국 허리에 탈이 났고 물리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출산 후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두꺼워진 팔뚝, 끊어질 것 같은 허리, 팔 저림, 무릎 시림 등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아이와 처음 만난 순간 엄마가 경험하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를 낳자마자 얼음물을 벌컥 들이켜고 아이를 골반에 척하고 얹은 채 걸어 다니는 서양 엄마들과 나의 부실한 몸은 태생부터가 다르다. 그걸 무시하고 어설프게 서양 엄마를 따라 하려다가는 골로 갈 수 있으니 한 동안 따뜻한 물로 연명하는 수밖에.
허리는 아직도 좋지 않으며 물리치료는 아직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