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를 깎는 나라

by 물고기자리

이번에는 동생이 바닥에서 갖고 놀던 레고를 밟고 미끄러지는 순간, 들고 있는 가위가 아이의 팔을 파고든 사고였다. 너덜너덜해진 살점을 본 순간 이건 꿰매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마땅히 둘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 봤자 큰 소용은 없었다) 네 식구가 응급실행을 감행했다. 신랑과 둘째 아이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얗게 질린 신랑을 보니 내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응급실 침대에서 수술이 이루어졌다. 마취 주사를 놓았지만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아이는 계속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계속 아프다는데 마취가 된 거 맞나요?”


그리하여 꿰매다 말고 다시 마취 주사를 놓는 해프닝이 몇 차례 이어졌다. 결국 마취가 제대로 된 걸 확인하고 꿰매긴 했으나 한국처럼 깔끔한 자국을 기대할 순 없었다. 아이의 팔에는 아직도 흉터 자국이 남아 있다. 아이가 좀 크고 나서 물어봤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아이의 너덜너덜한 살점에 계속 들어가는 주삿바늘을 지켜보는 건 괴로웠지만 한 번 경험해서 그런지 조금은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아이의 정신은 멀쩡했으니 내 입장에서 그건 별일 아니었다.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는 신랑과는 달리 나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침착했다. 그건 수술이 끝난 뒤 스티커를 받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날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사건 당사자도, 그걸 목격한 나도 아닌 아이 아빠였다. 아이의 꿰맨 상처를 가장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아빠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처음이었을 거다. 다친 아이, 아픈 아이를 본 순간이. 나의 처음을 돌려보며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응급실 의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그랬다. 서비스직이라는 의식이 강해서 그런지 이곳 의사들은 의사가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말들을 가끔 툭 던져 나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은근히 위로가 된다.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프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만약은 없다. If로 시작하는 문장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냥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면 된다.


응급실에 다녀온 뒤 1,000달러가 넘는 청구서가 날아왔다. 기겁한 나에게 신랑이 태연하게 말했다.


“전화해서 못 낸다고 말하면 돼. 그럼 깎아줘.”*


“무슨 과일값도 아니고 깎아 달라고 하냐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거짓말처럼 금액이 확 줄어든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다.


“그럼 처음부터 왜 이렇게 비싸게 청구하는 거냐고.”


“낼 수 있는 사람은 내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비싸게 부른 뒤 낼 수 있는 사람은 내고 못 내는 사람은 깎아준다 이건가? 병원비를 깎는다는 생각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사회답다 싶었다. 단, 못 낸다고 반드시 연락해야지 아무 말 없이 연체했다가는 벌금이 붙어서 어마어마하게 불어 버릴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연락해서 읍소하는 사람은 사정을 배려해 준다는 언뜻 보면 굉장히 자상해 보이는 이 시스템에는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낼 수밖에 없다는 무배려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어떠한 시술이나 수술의 정가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어떻게 마음 놓고 수술대에 오를 수 있을까. 다들 나중에 깎으면 돼,라는 생각으로 (그럴 리 없지만) 맘 편히 수술대에 오르는 건가? 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 미국의 병원비는 네고가 가능하다. 병원에는 환자와의 협상을 전담으로 하는 부서가 있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을 도와주는 소셜 워커도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돈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병원은 비용을 낮춘 청구서를 보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 낮은 금액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심할 경우 개인 파산 신청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높은 금액을 청구하는 것일까? 인건비가 비싸기도 하고 의료소송에 대비해 그러기도 하겠지만 결국 이익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높은 청구서를 받아 든 소비자를 후들거리게 만드는 이 같은 부풀리기 관행은 결국 자본주의의 단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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