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다는 말

by 물고기자리

작년 7월 초 코로나에 걸렸다. 2년 가깝게 잘 버티다 관광객 많은 MOMA에 갔다가 결국 걸리고 말았다. 다행히 나만 걸렸고 한 동안 방 안에 격리한 채 지냈다. 감기약과 해열제를 먹으며 버텼다. (의사는 극구 부인했지만)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 간수치가 급증했다고 믿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코로나 치료제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 무렵 유난히 주위에 아프다는 소식을 자주 접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조금 더 자세히 검사받기 위해 한국에 간다고들 했다. 혼자 몸으로 간 이들은 그나마 여유롭게 수술을 받고 또 회복한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이 딸린 이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아빠가 아플 경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엄마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르는 수술과 회복 기간 내내 가족들이 곁에 없는 아빠는 아빠대로 힘들고 엄마는 엄마대로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들다. 언제든 우리 가정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지만 지금은 이곳의 시스템에 적응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한국과 비교해서 불편할 뿐, 보험에만 가입한다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비싼 약값을 지원하는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시행되고 있다. 한국인이라, 외국인이라 피해를 받는다는 의식만 없으면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얼마 전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발악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수화기 너머 기계가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나의 생일과 이름을 인식하지 못한 건 기계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게다가 정말 큰 병에 걸렸는데 보험회사에서 혜택 제공을 거부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된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부당한 건 사실이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청구하고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깎아주는 이상한 시스템은 지금도 누군가의 배만 두둑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 사태 당시 그 약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실직으로 갑작스럽게 무보험 상태가 된 이들은 팬데믹 초기에 집중치료실 같은 비싼 치료를 받으며 엄청난 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겠다고 결정한 건 우리 아닌가.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매사에 투덜이 스머프처럼 행동하는 건 다른 얘기다. 제약 회사의 꼼수도, 잇속만 차리는 보험사의 욕심도 못마땅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위하려는 의료진의 마음도 확실히 존재한다. 어떻게든 이곳의 좋은 면을 보려는 나의 발악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좀 어떤가.


“Are You sure?(정말 괜찮아)?”


이곳의 의사들은 꼭 두 번씩 묻는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한국에서의 습관 그대로 늘 괜찮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에게 조금 불리해 보여도, 조금 불편해도 그냥 다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건 신랑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조금 더 자기 걸 챙겨도 될 거 같은데 신랑은 꼭 괜찮다고 해서 나 혼자 뒤에서 씩씩거린 적도 많다.


“No, You’re not.”


그런데 나의 흔들리는 눈빛을 읽었는지 알아서 먼저 챙겨주는 의료진들도 많다. 사소하지만 별것 아닌 건 아닌 환대. 괜찮다고 해도 기다리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자리를 이동해 준다던지, 검사를 받는 동안 다리의 자세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재차 묻는 태도 같은 배려를 많이 받았다.


나의 ‘괜찮다’가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음을 의식한 뒤부터는 대답하기 전에 정말로 내가 괜찮은지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공손한 태도로 받아들여졌던 그 말이 진짜 내 상태를 돌보지 못하게 만든 장애물은 아니었을까.


좋은 환경이라고 모든 것이 좋지만도 않고 나쁜 환경이라고 모든 것이 나쁘지만도 않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복지국가라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젊은이들의 불만이 넘쳐난다. 유럽의 무료 의료 서비스라는 허울을 벗겨보면 네다섯 시간이 넘어가는 대기 시간이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최상은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감정들, 경험들, 생각들이 차차 형성되어 삶의 얼굴을 형성한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얼굴이 너무 험상궂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억울함을 훈장처럼 달고 살지는 않기를.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제공되며 건강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본주의가 적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건강은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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