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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짜 신사임당 Jul 24. 2020

우리 집에는 돈 잘 주는 하숙생이 살고 있다.

feat. 하숙생이라 쓰고, 남의 편이라 부른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는 동생이 내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언니.. 저 이혼하고 싶어요."

"뭐? 갑자기 왜?"


꽃다운 나이에 아이가 생겨 결혼한 어린 엄마. 잘생긴 외모의 남편이 언제나 불안했다고 한다. (응.. 그건 네 생각 같아..)


아니나 다를까. 술을 마실 때마다 항상 여자가 껴있었다고 한다. 그래.. 남자가 그럴 수 있지.라고 애써 참아보았지만 열 받는 걸 어쩌나.


그런데 이놈. 아니 이 친구 남편. 손버릇까지 나쁘다고 한다. 아이를 안고 있는데도 화가 난다고 발차기를 했다나 뭐라나..(이런 씨 발라먹을 수박 같은 새끼..)


그런데 더 가관인 건 술이 깨면 기억을 못 하고 다정한 남편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소름..


문제는 술 먹는 횟수가 늘었다는 것! 거기에 시댁도 드라마보다 막장이다. 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이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을까.


친정엄마한테라도 의지할까 했지만 몸이 너무나 아프셔서 아이들을 봐줄 여건도 안된다고 했다. 짠했다.


어쨌든 자기는 이혼을 하고 싶다는 거다.


화가 너무너무 나서

'그래! 이런 개쓰레기 같은 놈은 당장 버려야지. 애들도 때렸다고? 당장 경찰에 아동학대, 가정폭력으로 신고하자! 진단서도 끊고, 그동안의 증거들로 위자료도 왕창 뜯어내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시 이성을 찾아본다.


나는 그래도 너보다 어른이니까.. 세 아이의 엄마니까.. 아이들도 생각해야지.




현실적으로도 생각을 해야 했다.


추운데 아이 둘 딸린 어린 엄마가 갈 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간다고 쳐도.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일을 구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아프거나 쉬는 날이 오면 일자리가 유지될 수가 없다.


이혼 한 언니들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이혼한다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에..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빠의 부재를 엄마가 다 채워주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척 외롭다고 했었다.




한참을 생각했던 나는 물었다.


"생활비는 주니?"


"네? 네.. "


"그럼.. 그냥 살아. 하숙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같은 때에 이혼하면 너만 손해야. 갈 곳은 있니?"


"아니요.."


"애들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래? 애들 아직 너무 어려. 애 봐줄 곳도 마땅치 않다며. 너 일도 제대로 못할 건데 말이야! 그리고 그 넘은 술 먹을 때 집에 안 들어온다며. 굳이 들어오라고 할 것도 없어.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없으니까 생활비 악착같이 모아. 돈이 있으면 낮았던 자존감도 올라간다. 그 인간 없어도 살 만할 때  그때도 이혼해야겠다고 싶걸랑 그때 가서 해"


"아.. 역시.. 언니랑 이야기하길 잘한 것 같아요. 네.. 언니.. 하숙생처럼 생각할게요.(하하) 고맙습니다"




그 후로는 1년에 한두 번 연락이 올뿐. 잠잠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데이트한 것을 보니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회상하니 우리 집 하숙생이 생각난다.

(때리고 싶게 참 잘 잔다^^)


일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제하고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 스트레스가 많지 않다는 천진난만함. 어쩔..


코로나로 해외를 못 가 스트레스 받는다는 삐리리


그래도 아직까지 나에게 손찌검, 쌍욕(?) 한 번 안 한 고마운 양반.


이렇게 우리 집에는 돈 잘 주는 하숙생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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