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안의 블루 (1992)
동명의 듀엣 명곡이 삽입되었다는 점, 그리고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봤다. 또 파란색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내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1992년, 무려 30년전의 영화인데 굉장히 세련되고 파격적이다. 여담인데 30년전의 서울말은 확실히 다른지 깨끗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런데 자막이 없어서 몇 번씩 돌려본 장면도 있었다. 내가 시대를 살아보진 못했으니 진짜 사회가 저랬는지, 아니면 정말 이상을 담은 것인지싶긴 했지만 이 영화는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여성의 일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을 담았다. 주연 여성, 유림과 남성, 호석의 직업이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라는 점도 상당히 의미있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표현하고 움직이는 직업이기 때문에.
"블루는 사랑이라는 언어 뒤에 감춰진 악마적인 빛깔이다."
유림은 디스플레이 디자이너지만, 결혼을 하며 일과 가정의 상황이 계속 부딫히는 것을 경험한다. 슈퍼우먼 컴플렉스, 라고 표현되는 딱 그런 여성이다. 사랑과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하는 유림은 디스플레이를 바꾸려하다가 손이 마비되고, 일을 그만둔다. 그렇게 집안일에 안주하던 유림에게 어느 날 테잎이 하나 배송된다. 결혼 이전, 유림이 자유롭게 일을 하던 때를 담은 비디오다. 이후, 영화는 현재의 유림의 모습과 과거의 유림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흰색은 꿈이다. 꿈을 자르는 그녀의 숨겨진 빛깔은 무엇일까."
"그녀는 노란색을 선택했다. 노란색은 환상이다."
"공격적인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오늘 밤, 그녀의 빛깔이 움직인다."
색채가 도드라지는 영화인만큼 색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다. 우선 흰색은 꿈 중에서도 전통적인 여성의 꿈, 그러니까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흰색이 도드라지는 부분은 웨딩드레스 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노란색은 환상, 사랑에 비관적인 태도를 가진 호석에게는 사랑의 환상이다. 즉 노란색은 환상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뜻한다고 봤다.
흰색과 노란색에 비해 빨강과 파랑에 대해서는 직관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특히 빨강은 언급조차 없는데, '역동성'을 계속 강조하는만큼 빨강은 심경이나 행동에 변화가 시작될 때 나타나는 것 같았다. 빨강이 워낙 강렬하기도 하고 그래서 빨강이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 메모를 해두었는데 대부분이 변화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블루였다. 감독이 블루라는 색채에 꽂혀있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너무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다보니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싶었는데 아마도 무언가가 결여된 상태를 보여주는 색이 아닐까 했다. 유림은 일과 사랑 모두 잘 해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사회가 여성에게 원하는 것처럼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 안주하고 있으니, 유림이 집안일을 하는 장면들에 모조리 블루 필터가 씌워진 것은 '일'이 결여된 상태임을 암시한다고 봤다. 또 블루톤이 지배적인 공간이 있다. 유림이 함께 사용하던 호석의 작업실.
"사랑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희생과 봉사로 밀어넣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일 뿐이야."
"참된 재능은 집중을 필요로 해. 집중하려면 사랑은 -"
"(당신, 섹스중독이예요? 묻는 유림에게) 그런 말은 없어, 사랑중독이란 말은 있지. 러브홀릭. 사랑하고 있어야만 불안하지 않은, 알콜 중독같은 현대인의 정신 질환이지."
호석은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일과 사랑의 완벽한 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호석의 작업실에는 사랑이 결여돼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호석이 찾는 것은 "역동적인 여성". 그는, 능력있던 누나가 사랑을 쫓아 미국으로 떠난 후 실종된 것을 경험하고, 일로서 역동성을 가진 여성을 찾아 헤메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스럽게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리를 뛰던 유림이 그의 눈에 띄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관찰대상과도 같은 유림이 내뿜는 색은 블루가 아니다. 블루가 그녀를 감싸고는 있지만, 작업실 안에서 그녀의 색은 노랑. 계속해서 일과 사랑을 모두 잘 해내겠다는 환상을 품고있다는 뜻이 아닐까했다.
함께 다채로운 색 속에서 작업하는 디자이너들. 둘이 가진 빛깔들이 폭발하는 창작의 순간. 그리고 함께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자며 제의를 하는 호석과 그 말을 듣는 유림의 옷 색이 보라색인 것은, 둘이 함께 있을 때 지배적이던 파란색에서 변화를 암시하는 빨강이 섞여, 두 사람 모두 큰 변화를 앞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했다. 두 사람의 공통적인 변화라면 둘의 관계에 대한 미래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유림은 노란색 차를 타고 온 남자와 결혼을 하는 삶을 택하고, 호석은 이태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녀는 노란색으로 돌아갔다. 이제 나는 꿈꾸지 않는다."
영화는 이 시점에서 현재의 유림의 모습으로 중심을 옮기며, 거실 한가운데에 선 유림의 모습을 다양한 색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유림은 테잎을 들고 호석을 찾아 이태리로 떠난다.
둘은 함께 밤을 보내고, 호석은 유림에게 이태리에 함께 남아 일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결혼생활까지 겪으며 가치관이 더욱 뚜렷해진 유림은 말한다.
"더 이상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찾고싶지 않아요. 그런 점에선 호석 씨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유림은 떠난다. 호석은 그녀를 전쟁터로 떠난다고 표현하고, 이어지는 유림의 독백과 이어지는 (아마도 "우리 이혼해요"라고 남편에게 말한 것 같은) 씬은 유림의 결단을 보여준다.
"그가 나에게 전해준 수많은 빛깔들을 그에게 전해주고 떠난다. 나의 빛깔들은 내가 만들어갈 것이다."
우선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해방되겠다는 유림의 선언이 정말 의미있는 이유는, 사랑과 결혼은 함께할 남성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호석은 사랑을 마취에 비유한 반면 섹스는 역동적이라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섹스는 그 자체의 운동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욕망의 표출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한편, 사랑에서의 미덕은 양보(욕망의 제어)와 배려(나보다 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사랑이 더 억눌리고 정적인 상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도 개인의 욕구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표현의 욕구, 승진과 성공의 욕구, 경제적 욕구 등 더 다양한 욕구들로 점철된. 사랑과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역동적인 여성에게서 사랑이 결여되어야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개인의 욕망을 사랑이 자꾸 멈춰세우기 때문에. 사랑의 성공이 결혼, 가정생활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랑이 얼마나 정적인 것인지 더 다가온다.
"여자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가정이라는 거, 누굴 위한거지?"
그리고 일터로 돌아가 다시 그만의 창작욕구를 표출해내는 유림. 집안일이 싫어서 굳어버렸던 것인지, 마비되었던 손은 나았고, 자신이 행복한지 불안한지도 잘은 모르겠지만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임을 말하고 영화는 끝난다.
자기가 자길 봐도 행복한지 불안한지 잘 모르겠다는 유림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호석이 만든 비디오가 유림을 비추었고, 유림의 빛깔들이 호석의 음성을 통해 해석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호석은 물론 유림에 대해 이미지적인 해석을 가할 남성도 없고 유림은 그 자체로 역동성을 뿜어낸다. 시종일관 유림이 호석에게 말했던 바와도 일치하는 모습이다.
"난 마네킹이 아녜요. 난 살아있는 여자예요. 당신이 바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간의 감정까지 디스플레이 하려하지 말아요."
요즘의 페미니즘 영화들을 보면서 아마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이 그만큼 극심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거기도 하겠지만, 여성의 폭력마저도 속 시원한 것으로 여겨버리는 게 내 마음에 들진 않았다. 또는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잘못된 일에 대한 정의를 바로 잡는 영화들도 많은데, 정의란 나에겐 너무 거대한 것이라 그런 걸 보면 저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내가 그렇게 이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잘못을 바로잡으러 행동할 동기를 주기엔 부족했다(물론 주변에서 그런 일이 닥치면 돕기야 하겠지만)(그리고 여성주의가 아니라 그 어떤 정의가 표현된 영화라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어떤 거창한 것보다는 정말 자신의 삶, 욕망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여성을 조명한 이 영화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일과 사랑을 모두 잘 해내기란 어렵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현실성, 그러나 절망보다는 희열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최근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진하게 다가왔다.
"그대 안의 블루". 누구나 모든 걸 다 잘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영화 제목은 어쩌면 우리 안에 평생 품고가야할 불완전성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데카르트는 말했다. 우리는 불완전성으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며 완전성으로 나아간다고. 물론 평생을 그렇게 살겠지만! 그러나 불완전성을 마주했는데도 왜 나는 기분이 좋은지... 참 신기하고 만족스러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