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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Jan 15. 2024

루틴

다람쥐 쳇바퀴 vs 루틴

'다람쥐 쳇바퀴'와 '루틴'은 뭐가 다를까?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은 혐오하면서, 루틴은 중요시한다. 단어 어감의 차이일까?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데.


여하튼, 나 또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혐오했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을 한 회사에서 정확히 17년 6개월 했다. 사람은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한 회사에 있으면서 만나는 사람은 제약적이었고 대부분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생각의 범위와 차원이 비슷비슷했다. 그런 나의 시야에서 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 퇴근 후에는 육아와 집안일. 정말 원더우먼 같은 힘을 발휘해 평일에 격일로 운동가기가 고작이었다. 연차를 쓰지 않으려면 웬만큼 아프지 않은 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했고, 주위 걱정에도 9 to 6는 견뎌야 했다. 연차는 나를 위해서 쓸 수 없었고 갑자기 아플지도 모를 아이와 학교 행사, 그리고 시댁 제사 등을 위해 비워놔야 했다.


그런 삶이 너무도 싫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


지금 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벗어났다. 너무도 어아한 건 난 지금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는 거다. 이런 아이러니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매일 머리 감기, 매일 샤워하기, 하루 두 번 세수하기, 하루 세 번 양치하기. 이 간단한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다. 간단한 이런 일들을 지키기 위해 수십 번 나 자신과 싸워야 했고, 지키지 못할 땐 한없이 나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고작 이것도 못해?

시작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지만 더 나아가 하루 24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걸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회사를 다닐 땐 훨씬 더 부지런했었다. 아침 공부를 위해 9시 출근인데도 7시에 출근하곤 했다. 8시가 지나면서부터 출근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면서 편히 공부하기 힘들어 최소 1시간은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남편 출근 시간과 맞췄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토요일 늦잠 자는 가족을 남겨두고 7시쯤 출발해 차를 몰고 10~15분쯤 걸리는 스벅에 가서 2~3시간 책을 읽던가 공부를 했다. 대략 10시가 넘어서면 초등학생 아들보다 먼저 일어난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그제야 책을 챙겨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아점을 먹었다.


지금은? 아침 9시 기상도 버겁다. 늦게 자는 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알람 없이는 9시 기상도 힘이 든다. 그렇게 빈둥거리다 오전이 지나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이것저것 조금 하다 보면 어느새 4~5시가 된다. 그때부터 집안일과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치우고 TV 좀 보다 보면 밤 10~11시다. 그러다 계속 TV를 보든 유튜브를 보든 이래저래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보통 12시가 넘는다. 가끔은 1시도 넘긴다. 이런 생활은 번역 일이 없는 날들의 일상이었다.


이런 게으른 생활을 탈피하고자 많은 애를 썼다. 그것이 바로 여전히 핫한 '나만의 루틴 만들기'다. 루틴 만들기의 목적은 시간 관리라고 생각한다. 시간 관리하기 가장 좋은 게 사실 직장생활이다. 이건 나의 의지와 관계없어 내 약한 의지를 탓하거나 지키지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점인 프리랜서 생활을 최대한 직장생활과 접목시켜 생활하려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실패하면 다시 계획하고 실행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의 결론은 아침을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것. 최소한 직장인 시작 시간과는 같아야 한다. 장소는 가능한 집을 피하기. 그래야 여느 직장인처럼 아침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양치하기가 쉬워진다. 많은 책에서 말한다. 인간은 게으른 게 당연하고 의지가 약하다고. 그래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씻고 카페를 가서 점심시간까지는 뭐든 하는 거다. 책을 읽든,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그리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든 죄책감은 없다. 


되돌아보면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삶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누워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걸 매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를 다닐 땐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이는 어쩌다 하루일 뿐 계속해서 하라고 하면 돈을 준다고 해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너무 뒤늦게 나를 알게 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이런 나를 알게 되었고 나만의 루틴 만들기는 수정과 반복을 거치면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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