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는 한 달 동안의 야근으로 의도치 않게 미뤄두게 된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두 번째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장맛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우산을 들고 자박자박 걸어서 모임에 참여했다.
내 테이블에 있던 인원은 6명이었다. 이전에 봐서 눈에 익은 여자분과 모임장, 그리고 처음 온 남자분과 처음 본 여자분, 그리고 늦게 오신 여자분까지 6명이었다.
내가 가져간 책은, ‘IMF 키즈의 생애(2017, 안은별, 코난북스)’였다.
대학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IMF란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인터뷰 방식으로 구성해서 나열한 책이었다. 인상 깊은 점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소개하기 위해 가져 갔다.
그런데, 독서 모임은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첫 번째로 책 이야기를 하던 여자분(40대)이 갑자기 자신의 이혼 이야기를 고백했다.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데 회사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 말미에는 눈물도 글썽였다.
아아, 마음이 아팠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과 나누기에는 버거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테이블에 있던 다른 남자분(아마도 20대)이 자신이 그 여자분의 아들과 같다며, 부모님이 이혼을 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어머니로 인해 힘들었던 점, 마음의 짐을 이야기했다.
아아, 역시 마음이 아픈 일이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자 모임장 여자분(30대)이 자신의 이혼을 고백했다. 아, 내가 지금 이혼한 사람들의 위로 모임에 나와있는 걸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받아서 다른 20대 여자분이 자신의 부모님도 이혼을 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늦게 모임에 참여한 여자분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둘만 할 이야기가 없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꽤 오랫동안 이혼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이 불쑥 내미는 내밀한 이야기는 좀 버거웠다. 이혼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하는 생각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인에게 위로받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가 좀 버거웠다. 섣불리 무어라고 위로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임이 끝나고 뒤풀이에 가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로 독서모임을 계속 나가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두 번째 모임 뒤에 나의 의지를 꺾는 사건이 또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8월이 되었다. 한해의 2/3이 지나갔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시점, 낯선 사람에게서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되시나요?’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였지만 상대가 본명으로 이름을 해두어서 이름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안의 예민하고 불안한 자아가 톡, 하고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죠?’
‘아, 전 %%%라고 합니다. 예전에, '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2년 전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았다가 서로 지역이 멀어 만나지 않고 소개팅이 무산된 사람이라고 했다. 이름과 직장, 학부를 밝히며 자기소개를 해왔다. '뭐지, 갑자기?’ 싶었지만 대화를 이어갔다.
요지는 나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2년 전에 못한 소개팅을 이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꽤나 급했다. 상대방에게 지방에 있으니 소개팅 때문에 서울에 오기 어려울 것 같다, 언제 서울에 올 때 연락 달라고 했다. 그러자 상대는 당장 오늘 저녁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정중하게 약속은 미리 잡아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내일인 토요일 점심을 이야기했다. 한번 거절한 터라 더 거절하기 어려워 그러자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하나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30살이 넘은 이후로 소개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다 그랬다. 비슷한 식당에서 비슷한 대화를 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겠지만 상대도 비슷하게 심심란 것이었을까? 그냥 한번 얼굴이나 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연락을 한 사람이니까.
토요일이었지만 회사에 가는 듯이 옷을 차려입었다. 상대방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은 편이었다. 키도 외모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잘생기진 않아도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키도 평균은 되어 보였다.
밥을 먹고 걷고 커피를 마셨다. 왠지 얘기도 잘 통했다. 와, 소개팅 실패만 하더니 드디어 인연이 오는 걸까?
커피를 마시고도 한참을 이야기하며 산책을 했다. 상대는 다시 지방을 내려가고 돌아가는 길 내내 카톡도 계속됐다. 산책을 하다 들른 서점에서 내가 읽었다 말한 책도 주문했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 전화 통화도 했다. 나도 호감이 있는데 상대도 호감을 표시하다니, 이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는구나, 감격스러웠다. 마음이 둥실 부풀어 올랐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상대가 지방에 근무한다는 것이었는데 마음만 있다면 그런 점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귈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카톡은 주중 내내 이어졌다. 그러다가 또 전화 통화를 했고 주말 약속을 잡았다. 업무가 변경돼서 바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주말에 서울에 오겠다고 했다. 먼저 날짜를 잡고 서울에 오겠다고 하니, 그다음 만남에는 내가 간다고 해야겠다, 생각도 했다.
그런데 상대는 그다음 날 바빠서 안될 것 같다면 약속을 취소했다. 그리고 다른 날짜를 제안하지도 않았다. 주말 내내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하는데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어서 그럼 내가 갈게,라고 할 수가 없었다. 주말 내내 출근할 거라는 말이 돌려 말하는 거절인지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카톡으로 약속을 취소하고는 다음날까지 아무 말이 없기에, 이쯤 되면 일하고 들어갔겠지 싶은 늦은 오후에 카톡을 보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되돌아오는 말투가 딱딱했다.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밥 한 끼 먹은 사이였다. 그런데, 내상을 입었다. 너무 의미 부여를 한 탓이었을까? 상대는 그냥 카톡 목록을 훑다가 그때쯤 바꿔놓은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누구더라, 하다가 연락을 한 것일지도 몰랐는데, 나는 우리가 정말 인연이 아닐까 했다. 2년 전에 잠깐 연락하고 말았는데 다시 만나서 서로 호감이 생겨서 인연이 된다면 그게 운명일까 하고 생각해 버렸다. 혼자 그렇게 상상하다가 아닌 걸 알게 되자 실연한 것처럼 마음이 쓰렸다.
일주일 내내 마음을 너무 띄운 까닭인 걸까, 기분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뜨거운 여름 날씨에 몸이 늘어지듯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아 버렸다.
pixabay의 Sergei_spas님의 사진을 배경에 활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