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을 잃어버리던 날

by 눙디

아파트 단지마다 하나씩은 있다는 초등학교.

하지만 내가 다니던 그 옛날의 국민학교는 꽤 멀리 있었다.

여덟 살짜리 내 걸음으로는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매일 걸었다.

다들 그렇게 다녔으니, 그 거리가 먼 줄도 몰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늘 미싱 앞에 앉아 계셨다.

천 조각을 자르고, 시침핀을 꽂고, 바늘을 움직이며 옷을 만들었다.

엄마는 의상실을 운영하셨고, 하루 종일 바쁘셨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엄마는 내 손에 500원을 쥐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장면 한 그릇 먹고 와.”

중국집은 가까웠고, 그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500원이었다.

그 말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길에서 넘어졌고, 손에 쥐고 있던 500원은 또르르 굴러 인도 바닥의 하수구 덮개 사이로 빠져버렸다.

그 시절 도로엔 시멘트나 돌로 만든 판석에 둥근 구멍들이 뚫려 있었는데 빗물이 아닌, 내 500원이 그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손도 들어가지 않고, 하얀색 스타킹은 찢어졌고, 무릎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나는 속상했고, 아팠고, 무엇보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무서워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놀랬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내 무릎을 닦아주며 말씀하셨다.

"뭐 그런 일로 울고 그래. 어서 눈물 닦고 자장면 맛있게 먹고 와"

그러곤 또다시 500원을 손에 꼭 쥐여주셨다.

이번엔 그 500원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 바닥만 뚫어지게 보며 자장면 집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자장면을, 정말이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엄마는 여전히 재봉틀 앞에서 옷감을 만지고 계셨다.


세월이 흐른 뒤, 엄마는 그 시절 일감이 너무 많아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그날도, 허기를 안고 하루를 보내셨을 것이다.


왜 그날, 나는 '엄마도 같이 먹으러 가자'라고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을까.

그 말이,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자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엄마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