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색 크레파스

by 눙디

국민학교 2학년.

엄마는 시험을 잘 보면 36색 크레파스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시험공부를 했고, 시험지를 풀 때마다 머릿속엔 크레파스가 아른거렸다.

그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금색과 은색 때문이다.

12색이나 24색 세트에는 없고, 오직 36색 크레파스에만 들어 있는 반짝이는 색.


마침내 시험을 잘 보고 상장까지 받아왔고, 엄마는 약속을 지켜주셨다.

조심스럽게 크레파스의 뚜껑을 열고 금색과 은색을 꺼내 쥐어보았다.

크레파스가 닳을까 아까워서, 선 하나도 그려보지 않은 채 그대로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그 크레파스를 자랑하고 싶어서 학교에 들고 갔다.

그날도 평소처럼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가 있었다.

우리는 벤치에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을 나란히 올려두고 줄을 서야 했다.

나는 내 책가방 옆에 소중한 크레파스를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아침 체조를 하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으며,

마음속으로는 '조회가 끝나면 친구들에게 보여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회가 끝나고 벤치로 돌아갔을 때, 내 크레파스가 사라져 있었다.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은 그대로였지만, 크레파스만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크레파스는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누가 잘못 가져갔다면 꼭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날도, 그다음 날도 크레파스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속상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크레파스, 그 반짝이던 금색과 은색을 나는 잃어버렸다.


그날 이후, 어린 나는 물건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게 소중한 교훈이 되었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함부로 두지 않고 아끼는 마음,

잃어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지키려는 습관이 그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건 크레파스였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마음가짐을 얻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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