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like a butterfly!
한 소녀가 아이슬란드의 평원을 달린다. 어둑어둑한 새벽 검은 옷을 입고 숨이 찬 상태에서 앞서 달리는 차를 따라가는 듯하다. 차에는 소녀의 악몽과 같은 상황을 도와줄 수도 있을 드림캐처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그는 그것을 잡으려는 듯하다. 그러나, 소녀는 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쓰려진다.
아침이 밝아오고 소녀는 여전히 쓰러져있다. 쓰러져 있는 소녀를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한 화면에 있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소녀는 검은 옷을 던지고 흰 옷을 입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가며 광활한 대지 앞에 추락한 비행기 앞에 다가간다. 그 구멍 나고 상처 난 비행기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비행기 내부로 들어가자, 깃털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줍는다. 그것을 손으로 모아 감싸자, 비추는 검은 화면. 비행기 앞에선 소녀가 깃털을 감싼 손을 펴자, 그 속에서 세상 바깥으로 나비들이 펼쳐 날아간다. 저 멀리, 저 높이.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에서, 마침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시한다. 나비처럼 날아오르라고(Fly like a butterfly).
이 장면은 이달의 소녀 <Butterfly>의 티저 중 하나인 "XIIX"의 내용이다. 이 소녀는 고원으로, 나의 세계관 첫 번째 글에서 빛과 그림자의 관점에서 이어진다. 검은 옷을 입은 채로 그림자에 쫓기던 전의 모습처럼 달리다가, 빛이 밝아지자 나비로 탈바꿈하듯이 검은 옷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기를 사랑하게 된 이 소녀는 이제 그 사랑법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고원은 이달의 소녀가 하나가 되기 전 개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추락한 비행기와, 추락 과정에서 떨어진 이카루스의 깃털을 쓰다듬고 감싸 안는다. 그리고 추락한 영혼들은 그녀의 도움 하에 나비의 날갯짓으로, 작은 날갯짓이지만 여럿이서 연대하듯 무리 지어 날아가는 것이다.
다른 티저 영상인 "XIIIX", "XIVX"은 각각 파리와 홍콩에서 촬영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같은 처지에 있던 소녀들을 찾아 올라간 후 자신을 옥죄던 목줄을 끊거나, 홍콩의 길 한가운데에서 두 소녀는 나비의 춤을 춘다. 이 세 가지 티저 영상을 종합할 때 우리는 이 지구에서 인물들 간의 공간적 연결점이 견고해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티저에 나오는 네 소녀는 '에덴 멤버'로서, 이 속에 등장한 공간은 모두 '지구 멤버'들이 개인별 뮤직비디오 속에서 실재하던 곳이다. 이전 앨범 속 'Hi High'에서 이루어낸 결속이 두 공간에 있는 인물들 간 만남의 설렘이었다면, 여기에서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연결 고리로서 서로가 어떤 처지였는지를 확인하고 공감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장소에서 이달의 소녀 멤버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소녀들을 발견한다.
덧붙여서, 이달의 소녀의 팬이라면 에덴과 지구라는 개념 이상으로,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그룹이 점점 하나로 모아지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파리(데뷔 번호 1번 희진-12번 올리비아 혜), 아이슬란드(3번 하슬-11번 고원), 홍콩(5번 비비-9,10번 츄, 이브)으로 장소의 연속성이 보이는데, 이때 인물들 간의 관계가 가운데 숫자로 수렴해 가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티저 영상들은 그들이 <Butterfly>라는 곡으로 응집되어 모이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 방향성이 그들의 중간에서 인물들을 연결하는 '중간계 멤버'와 같은 역할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뮤직비디오 관련 글을 써왔지만, <Butterfly>를 보기 전에 뮤직비디오는 무엇인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뮤직비디오는 '단체 초상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뮤직비디오와는 다르게 아이돌 산업은 3~4분 내의 뮤직비디오에서 적게는 4~5명, 많게는 12명가량의 멤버들을 담아내야 했다. 뮤직비디오는 곡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시각 이미지이나, 멤버들의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대중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멤버마다 개인별 장면을 삽입하여 '금발 머리', '빨간 머리' 혹은 '포니테일', '야자수 머리' 등의 형태로라도 기억되도록 말이다. 혹은 전체를 보여줄 때 통일된 콘셉트로 '섹시', '걸리시 girlish' 등으로 구분되는, 그룹의 대표 이미지로 바로 투사했다.
변화는 음악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음악과 아이돌의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SM 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는 그러한 트렌드를 선도하였다. 음악의 가사와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각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뮤직비디오의 역할은 충분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레드벨벳의 <덤덤> 뮤직비디오를 보고 '기계화된 산업 사회를 보는 비판적 시각'이라든가, <러시안룰렛>을 보고 '인간성 상실과 비극'과 같이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초현실주의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며, 이미지는 음악적인 코드와 나란하게 대중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2016년에 들어서면, 직캠, 즉 개인별 무대 영상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뮤직비디오의 초상화로서의 기능은 줄어들게 된다. 음악보다는 아이돌의 사적인 영역(브이앱, 유튜브 등)이 활발한 이미지를 생성해내며 그 자체 이미지가 멤버 개인을 정의하였다. 이를 가속화시킨 것이 프로듀스 101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인물의 직캠 영상을 보고,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이돌의 연습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고, 다른 인물들과 케미(잘 어울리는 관계)를 포착하여 케미명을 붙여주는 등 내적으로 친밀도를 쌓기에 팬들은 그들을 데뷔'시킨다'는 생각까지 이른다.
산업의 변화에 따라서 뮤직비디오의 추구 방향도 바뀔 필요가 있었다. 단순한 미학적 추구는 대중에게 난해함을 남겼다. 팬들이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서는 몰입을 위한 장치가 요구되었다. 프로듀스 101은 M.net의 프로그램 서사를 통해서 쉽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이외의 걸그룹은 기존의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케이팝 산업적 측면에서 남자 아이돌은 주로 확고한 팬덤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중성을 확보해서 포괄적인 팬층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걸그룹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이때 중소 기획사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어정쩡하지 않고 확실하게 팬덤을 확보하면서 대중적으로 확장해나갈지, 추세에 맞게 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그룹을 만들어 나갈지.
이달의 소녀의 첫 멤버 희진은 2016년 10월에 데뷔한다. 이러한 경향 아래에서, 이달의 소녀가 사용하는 세계관은 과거의 그것과는 같지만 다른 방식이었다.
<Butterfly>에서 세계관은 무엇이 어떻게 확장이 되는가, 아직도 설명할 세계관이 남아있는 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뮤직비디오는 일반적이지 않다. 보라색 건축물 아래에서의 군무, 혹은 흑백의 안무 영상 이외에 멤버들의 개인적인 장면이 담긴 것이 없다. 한 인물에 초점이 잡히더라도 그것은 군무 중에 담긴 프레임으로 생각될 뿐이다. 또한 이달의 소녀가 아닌 인물들이 잦게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Butterfly>에는 무엇이 등장하고, 세계관은 시각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어떠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가이다.
뮤직비디오의 시간 배분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느낀다. 이달의 소녀 멤버와 일반인이 비슷한 비율로 등장한다. 4분 34초의 뮤직비디오 영상 중에서 대략 4분, 약 240초 동안 음악에 맞춰 영상이 재생되는데, 이달의 소녀가 비치는 시간은 대락 116~120초 정도이다. 나머지 영상의 절반은 세계의 소녀들이 춤을 추거나 달리는 등, 이달의 소녀들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채워진다. 이 일반 소녀들은 어떻게,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가사를 살펴보자. <Butterfly>의 노래와 춤은 전 세계의 소녀들이 겪어야 했던 좌절들을 공감하며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춤과 노래는 '시작은 작은 날갯짓'이었지만, '이제는 내 맘의 허리케인'이 된다. 그 마음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상태가, 'Been been there never been been there', 즉 가보았지만 가지 않은 길이 있음을 깨닫는다. 혼자서 자신의 소망을 이루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하고 누군가와 함께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자, 나는 그곳에는 가보았지만 그 너머에 가보지 않은 공간 속 소녀들을 만나 연대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세계가 점점 작아져가'게 된다. 소녀들은 '저 멀리', '저 끝까지', '저 높이' 데려가는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바라고 있다.
뮤직비디오 영상은 가사의 내용을 인물이 있는 공간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가지 않았지만 가야 하는 그 장소에는 세계의 소녀들이 있음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란히 병치된 소녀들의 공간이 연결되면서 인종과 모든 차별을 초월하게 된다. 나아가서 홍콩, LA, 파리 등 전 세계 속 소녀의 모습을 비추어주며 그들 또한 춤과 노래로 다른 소녀들에게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 열거된 이미지들은 단순히 하늘 위를 향해 올라가려고 했던 과거의 뮤직비디오들과는 다르게, 인물들의 시선은 수평적으로 전 지구를 향해 이어지도록 하였다. 이달의 소녀의 안무도 이 수평적인 연결을 서로의 손을 붙잡고 다 같이 하늘을 보는 춤으로 시작하며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소녀들은 기존의 아이돌의 초상을 대체한다. 나는 기존의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아이돌의 캐릭터를 음악 속에서 잘 돋보이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초상화와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방법의 일환으로 개인의 단독 장면을 삽입하여 아이돌 멤버를 부각하지 않고, 대신에 전 세계의 소녀로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아이돌이 주인공이고 그 외의 것은 배경에 불과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이 뒤집힌 이미지로 표현된다. 아이돌은 그들의 세계관을 시작하는 시발점으로 존재하고 우리 모두가 그 속에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미지에 더해서 음악적으로도 전복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1절과 2절의 후렴 부분에서 으레 있는 합창 부분은 사라지고 음과 춤이 그것을 채우고 있다. 이전 앨범 <Hi High>에서 모두 함께 Hi, High를 외치며 만남을 표현했던 것과 다르게, <Butterfly>의 후렴 부분에서 이달의 소녀 멤버와 전 세계의 소녀들은 춤을 추고 그 사이에 'Fly like a butterfly', 나비처럼 날자는 가사만 울려 퍼진다. 후렴이 있어야 할 부분에서 반복되어 이루어지는 것은 격렬하고도 우아한 나비의 춤이며, 어떠한 노래의 구성보다도 춤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뮤직비디오가 안무 중심의 영상인 것은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이달의 소녀가 추는 <Butterfly>의 춤이란, 소외되고 아픔을 가진 전 세계의 소녀들과 연결되어 일어서고자 하는 세계관의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춤은 세계관의 네트워크 망에 접속하도록 하며, 치유와 희망의 퍼포먼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춤추는 소녀들은 아이돌이든 일반인이든, 필연적으로 아이돌과 대중 사이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위계관계가 사라지고 퍼지는 음과 춤이 유의미하게 공간을 채운다.
케이팝을 미술사 속에 위치시켜 분석하는 것이 '세계관의 확장' 시리즈의 목표였다. 그리고 이글에서 이달의 소녀의 <Butterfly>를 비롯한 모든 곡은 세계관이 음악을 장식하는 효과 이상으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케이팝의 시각 미술이 고전 초상화와 비교하는 것 이상으로, 음악과 이미지라는 상관관계에서 이미지가 보조적 수단 이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회화, 조각, 건축 등으로 미술을 분류하는 것처럼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된 케이팝 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였음을 알리고자 한다.
케이팝 산업에서 뮤직비디오란 두 가지를 다룬다. 그것은 아이돌 멤버의 캐릭터와 음악의 시각적 표현이다. 뮤직비디오의 제작은 이 두 가지 시각 표현이 긴장관계를 이루며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와 음악성의 시각적 비중을 생각해볼 때, 초창기의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인물과 그룹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지만, 소위 2~3세대 케이팝으로 넘어갈수록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시각적 분위기를 통해서 잘 전달하고자 했다.
이때, 세계관은 아이돌 캐릭터와 음악이 불일치할 수밖에 없는 틈 속에서 시각 요소를 확장시켰다. 세계관은 서사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음악 분위기가 특정되었다. 아이돌 멤버들은 세계관 시나리오에 맞게 부여받은 역할이 영상 속에 투사되거나, 세계관의 분위기에 맞게 연출되었다. 중요한 점은 세계관이라는 틀 속에서 시각적 작업의 개입도가 커졌다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는 음악의 장식적 효과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직접적으로 필요해졌다.
이는 케이팝 음악에서 잊힌 가사의 역할을 되살리는 것이기도 했다. 세계관 서사에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가사의 설명 또한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걸그룹 씨스타가 'Touch my body'를 부를 때 내 몸을 만져보라고 해도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겠으며, 블랙핑크 제니가 '모든 남자들이 코피가 팡팡팡'이라고 했을 때 제니가 멋있다는 의미 이상으로 누가 코피 흘리는 남자를 먼저 떠올리겠는가. 하지만 이달의 소녀가 'Fly like a butterfly'를 말했을 때는, 그것은 가사가 목소리로 음악을 채우는 역할이 아닌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가 의미를 가지게 되자, 가사와 이미지는 유기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가사의 내용이 어떤 이미지가 표현되도록 지시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지는 단순히 가사에 종속된 요소도 아니었다. 음악의 내용과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선택해야 하는 미학적인 고려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종종 근현대 미술들을 참조하면서 이미지를 발전시키거나, 혹은 노래-가사-춤 등 음악의 내적 요소에 무엇을 집중시킬지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판단하였다. <Butterfly>에서는 뮤직비디오 영상이 나비의 춤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안무 중심의 영상이 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케이팝 미술사는 세계관을 고안하면서, 시각 장치가 단순히 음악의 보조 역할을 뛰어넘어 음악 표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음악-가사 텍스트-이미지 이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모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케이팝이란 음악 산업이므로 음악적 가치가 가장 우선적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세계관이 보여준 확장성은 케이팝이 음악의 영역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시각 문화사적 측면에서도 파악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했다.
케이팝 미술사에서 이달의 소녀는 세계관이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루나버스(LOONAverse)라고 불리는 세계관 속에서 음악이 짜이고, 가사가 붙고, 영상이 제작되어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달의 소녀는 세계관 아이돌이라는 명칭으로 기억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단순히 세계관을 이해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케이팝 미술을 종합하여 시각 요소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로,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은 인물 중심의 케이팝 시각문화의 패러다임을 전복시켰다.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는 개별 멤버들의 뮤직비디오와 티저 영상을 통해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멤버들은 시간 차를 두고 데뷔를 할 때 각각 솔로곡을 받았고, 3~4명으로 묶여 유닛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중시했던 인물의 묘사는 완전체가 되기 이전까지 개인별로, 소그룹별로 이루어졌다. 즉, 완전체를 표현할 때 인물을 묘사해야 한다는 의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Butterfly>에서는 기존 케이팝에서 보이던 아이돌과 배경 인물들 간의 위계가 전복되더라도, 이달의 소녀들은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단어로 표상되는 인물 중심의 케이팝 산업에서, 이달의 소녀는 한 차원 더 높은 도약을 이루었다. 세계관이 시각과 음악을 묘사하는 점에 있어서 아이돌로서의 그룹을 묘사하는 제약을 떨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돌을 통해서 세계관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티저 영상이나 앨범의 설명을 통해서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Butterfly> 앨범을 발매하면서 가장 처음에 설명한 곡의 티저 영상만을 찍기 위해서 아이슬란드, 파리, 홍콩 등을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의 시각화와 인물의 묘사라는 관계에 있어서, 인물을 이미 충분히 설명하였기 때문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에 자유도를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세계관 속 행위들은 의식(ritual)과도 같다. 영상 속 인물들은 행위를 모방하면서 세계관 속에 편입된다. <Butterfly> 속의 일반인들은 이달의 소녀가 했던 행위를 따라 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사과를 밑으로 던지거나, 사과를 깨물어 이달의 소녀와 함께 나비처럼 날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달의 소녀의 행위는 열두 명의 공동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범이 된다. 전 세계의 소녀들은 이달의 소녀를 모방하고 동일시되면서 자기애를 회복하고 소망을 이루고자 한다.
세계관이 현실의 영역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Permission to Dance>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밝은 에너지를 전달하려는 이 노래 역시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으로 짜인 이미지는 일회적이지 않게 의미를 쌓아왔으며 연대의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전달한다. 그것이 또한 현실의 영역에서 공간적으로도 확산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인식하고 반복하면서, 실제 영역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며 그 당위를 '이달의 소녀의 역사' 속에서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달의 소녀 뮤직비디오는 기존의 뮤직비디오에서 사용되는 용법들을 포괄하여, 그것에서 <Butterfly> 뮤직비디오라는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아이돌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과, 음악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의 상관관계 속에서 변화를 이루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세계관은 이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달의 소녀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기존의 두 가지 묘사 방법을 모두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하나의 케이팝 미술사를 정리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로서 케이팝을 <Butterfly>에서 적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방법은 유닛별로, 즉 '지구 멤버', '중간계 멤버', '에덴 멤버' 별로 각각의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먼저 지구 멤버들은 인물의 캐릭터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이달의 소녀 1/3 유닛은 대표적인데,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 그려내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그들은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고 10대 청소년의 풋풋한 감정을 노래로 드러내고 있다. 반면 중간계 멤버의 영상들은 미학적인 표현이 강하게 드러난다. 김립의 <eclipse>나 진솔의 <Singing in the Rain>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을 바탕으로 시각 표현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인물들을 찍는 각도도 다채로워지고 소품도 미니멀해지면서, 색깔이 음악의 분위기에 맞게 표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덴 멤버의 경우 '세계관의 확장 1'에서 설명했듯이, 사과를 먹거나 바깥으로 던지는 등 세계관과 밀접한 행위들이 본격적으로 그들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행위는 <Butterfly>에서 세계의 소녀들이 모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달의 소녀는 '인물과 그룹의 성격 중심', '음악 중심', '세계관 중심'의 표현 방식을 완전체가 되기 이전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문법을 총정리하였다. <Hi High>가 이 모든 것의 만남으로 표현되었다면, <Butterfly>에서 나타난 방식은 세계관 중심의 묘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고도 볼 수 있다. 세계관이란 케이팝 내부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연으로 확장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달의 소녀 디렉터는 현실과 케이팝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흩트리면서 전 세계적 연대를 이룰 수 있도록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이미지가 음악의 주체적 요소로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였고, 케이팝이 음악이자 미술로서 정립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달의 소녀가 케이팝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었지만, 2016년 새로운 케이팝의 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음악과 인물을 표현하는 시각 효과는 유효하다. 아이돌들은 뮤직비디오 속에서 스스로의 캐릭터를 구축하고자 하며, 음악은 미술과 영상의 보조를 받아 효과를 극대화한다. 세계관 개념을 바탕으로 한 아이돌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엑소(EXO)나 그 이전부터 사용되던 방식처럼 멤버들의 캐릭터 정체성을 확실히 부여한다. 세계관 아이돌들은 미학적 접근 방식을 놓지 않고 몰입 가능한 내러티브적 요소를 집어넣고자 노력한다.
세계관은 시각적 장치를 통해서 음악 내적 균일성을 유지시키는 힘이자, 팬덤을 확보하고 대중을 유입시키려는 원동력이었다. 이달의 소녀는 산업적 측면에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미지는 음악의 주요 요소로 떠오르면서 기존의 케이팝 시각 문화는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아이돌 캐릭터를 묘사해야 한다는 제약을 넘어서 음악은 시각과 더 긴밀히 상호작용하여 전달될 수 있었으며, 전 세계 모든 이들과 연대가 가능하였다. 'Stan LOONA'라고 하는, 이달의 소녀를 지지하는 구호는 그러한 점에서 이달의 소녀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이달의 소녀 세계관의 시각 요소들은 케이팝을 하나의 시각 문화사 장르로서 파악해야 하는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지면이 길어져 다음 글을 통해 세계관과 그 이후의 아이돌을 생각하며 이 세계관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