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 평안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타인과 일상의 행복을 나눌 수 있고, 제법 유쾌한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변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사회생활로 마음은 점차 병들어갔다.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회사 직속 상사의 히스테리였다. 그에게 나는 그야말로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모든 감정 쓰레기는 다 호의에서 시작됐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그 시절, 나에겐 관계는 상대적이라는 말이 큰 상처로 돌아왔다. 그 말인즉슨 내게도 문제가 있으므로 상대가 함부로 대하는 것이란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절 나에게 돌아가 이야기 해줄 수 있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이유 없는 미움도 있다고. 그러니 모든 걸 이해하려고 들지 말고,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려 들지도 말라고..."말이다.
그 시절 나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서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늘 쓰러질 것만 같은 피곤함에 절어있었다. 항상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양가적인 마음을 품은 채 집으로 향하던 중,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는 빛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했다. 5평 남짓의 작은 화실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매일 지나가던 길이었지만, 화실이 언제부터 그 길 위에 있었는지 그 풍경이 참으로 생경하였다.
문득 ‘그림이 심리 치료에 좋다던데... 나도 해 볼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빠듯한 형편에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사치 같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림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결국 며칠 후 화실 문을 열고 말았다. 사실 단순히 비용을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크게 동했고, 그렇게 그림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소질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기에 그림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갈 때마다 선생님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수강생 이탈 방지를 위한 영업의 일종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낯선 따뜻함이 큰 위로가 되어갔다.
‘아, 나도 잘하는 게 있는 사람이었네’
붓질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결과물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으로 그림은 나에게 점차 취미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처럼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다시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수년이 흐른 후 나는 '양극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말았다. 그 사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양극성 장애가 발병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집중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 결과 유일한 비상구였던 그림마저도 그리기 힘들어졌다. 기다림의 미학이라 느꼈던 그림의 매력이 어느 순간 숨 막힘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 그림을 빼앗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