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저요? 저 한잔밖에 안 마셨는데요?"
알코올 한 방울만 마셔도 발끝에서부터 반응이 온다. 손으로 허벅지를 벅벅 긁기 시작하고, 화장으로 커버했던 얼굴은 어느새 새빨개져 만취 직전의 사람으로 변한다. 그리고 심장은 180킬로로 뛰기 시작한다.
제일 중요한 기분은? 술을 마시면 보통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내가 흥겨운 건 술로 취해서 한껏 신난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고, 목소리가 커진 건 그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취했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내 몸으로 들어와서 아세트알데히드가 된 후 더이상 분해되지 못한 채 몸 밖으로 나간다. 겨우 한잔 마시고 다음날 아침 운전하면 음주운전으로 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몸은 술에 대한 제어장치가 없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억지로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맞췄다. 술을 안 먹겠다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수만 가지의 핑계가 필요했다. ' 제가 아침에 치과치료를 받아서요.' ' 요즘 보약 먹고 있어요.' '저번에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높게 나왔어요.' 등등 같잖은 핑계를 대가며 안 마셔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다.
"뭐?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마시는 거야. 술이 보약이야."
술을 잘 마시면 사회생활 잘하는 거고, 못 마시면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는 우리네 문화에 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술을 억지로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술을 더 잘 마셨더라면 그들과 좀 더 어울리고 무난하게 회사생활도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게 정답은 아니지만 말이다.
퇴사를 하고 나니 자연스레 회식자리도 없어지고 술자리도 사라졌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지만 술을 사랑하는 작가들, 화가들을 보며 술의 매력이 궁금한 적은 있다. 압생트를 사랑한 고흐는 환각에 의해서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냈고,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이 진짜이며 맨 정신에 쓰는 글을 쓰레기라고 말한 유명 작가도 있다. 술로 인해 그들의 예술작품이 풍부해졌음은 분명하다.
나는 맨 정신에 글을 쓰고, 힘들 때도 맨 정신으로 이겨내고, 맨 정신에 잠이 든다. 가끔은 술로 힘든 게 잊히면 좋겠다 싶지만, 술 마신다고 그렇게 될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어지러움에 사로잡혀서 노트북을 제대로 킬 수나 있을까.
술 안 마시면 노래방도 안간다는 친구, 술 안 먹는 사람있으면 회식재미가 없다는 상사, 술이 인생이 재미라고 울부짖던 누군가. 그 모든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저 술 안 마셔요. 술 안마시고 노래방에서 정신나간애처럼 잘 놀구요. 회식 때 사람들 말 누구보다 잘 들어주고요. 짧은 인생 맨정신으로 즐기다 갈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