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어벤저스가 총출동한 고전 명반

Miles Davis - Kind of Blue

by 핵보컬

재즈란 신기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규격화된 악기를 연주할 뿐인데 어느새 듣다 보면 악기 연주만 들어도 그 사람의 이미지가 각기 다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척 맨지오니나 밥 제임스의 연주는 왠지 마음씨 따뜻한 옆집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브래드 멜다우나 팻 메스니는 얼핏 듣기엔 따뜻하고 친절하지만 왠지 막상 다가서려면 거리두기를 하는 까칠한 신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배드 플러스와 조슈아 레드맨의 연주는 나쁜 남자의 그것 같고, 말년의 쳇 베이커는 징글 벨을 연주해도 쓸쓸함과 우수가 묻어 나온다.


그중에 독보적인 자신만의 개성과 톤을 보유한 연주자가 바로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다. 왠지 건조한 듯하면서도 저 멀리에 있는 듯한 느낌, 닮고 싶지만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선배, 시크한 어른의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그를 따라오는 수식어는 'Cool'이다. 그도 이를 인지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밀고 나가는 이미지가 대중에게 먹힌 건지 실제로 그의 유명한 앨범 중에 'Birth of the Cool', 'Cool Blues' 같이 대놓고 이를 내세우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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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반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가 'Kind of Blue'이다. 1959년 발매된 이 앨범의 참여 멤버가 실로 화려한데,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 캐넌볼 애덜리, 윈튼 켈리 등 지금 봤을 때 재즈 계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들이 앨범 표지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앨범의 가장 훌륭하면서도 인상적인 점은 이렇게 화려한 참여진을 내세운 경우 오히려 각자의 개성과 자존심이 충돌하는 일이 빈번한데, 오히려 화려하지 않고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테크닉이든 개성이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을 만한 훌륭한 멤버들이 모였을 때, 그 앨범을 듣는 청자의 기대치의 초점은 아무래도 개개인이 얼마나 화려한 연주를 보여줄 것인지에 맞춰지게 될 수 있다. 그 기대치를 충족하는 현란한 솔로의 향연이 펼쳐진다면 그것은 멋진 일이 되겠지만, 그게 앨범의 러닝타임 내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피로감을 부르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이 음반의 최대 장점은 그러한 피로도가 굉장히 적다는 데에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멤버 개개인의 기량을 뽐낼 만한 솔로 타임이나 화려한 연주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러닝 타임 중 악기 솔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단, 크게 집중하고 듣고 있지 않는다면 이게 솔로 연주라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체적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게 이 앨범의 특이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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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연주자들 각각의 앨범만 해도 재즈 역사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맨하탄의 Birdland 클럽에서 Hank Jones 트리오의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당연히 라이브의 퀄리티는 훌륭했고, 피아노의 Hank Jones 외에도 베이스에는 John Patitucci, 드럼에는 Omar Hakim 같은 훌륭한 연주자들이 그 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로 귀중한 공연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공연은 재즈의 훌륭함을 내게 알려주는 동시에 그 피로감도 인지하게 해 주었는데, 바로 무한히 이어지고 반복되는 솔로 타임 때문이었다. 특히 Omar Hakim의 드럼 솔로는 정말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경이로운 화려함을 보여주었기에 환호갈채를 받아 마땅했으나 후반부에 들어서는 '아, 이제 그만 좀'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참기 힘들었다. 항상 그 이후에도 재즈 공연 때는 솔로 타임이 있을 때마다 "자, 여러분. 솔로 들어갑니다. 박수갈채환호 준비해 주세요."라는 듯한 암묵적인 분위기가 느껴졌고, 그것은 좋을 때가 더 많긴 했으나 아무래도 보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묘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Kind of Blue' 앨범에서의 솔로 분위기는 상술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저, 지금 솔로 할 건데, 그냥 눈 감고 편하게 들으세요. 딴짓하셔도 되고 그냥 배경음으로 깔아 두셔도 됩니다."라고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르륵 들어왔다가 나가는 느낌이다. 이는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데, 보통 아무리 대중적인 재즈 음반이라도 적어도 한 두 트랙은 12분짜리 무한히 난해한 연주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매니악한 곡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음반은 틀어놓고 집중을 하지 않으면 어느새 곡이 바뀐 지도 모를 정도로 은은하게 흘러간다. 즉, 굉장히 훌륭한 결과물을 내면서도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칭찬을 유도하거나 자기 자랑이 없는, 자연스러운 멋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의 앨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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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적 행보는 실로 독특한데, 1970년에는 'Bitches Brew'라는 파격적이고 난해한 재즈 록 앨범을, 1972년에는 아시아의 악기까지 도입한 'On the Corner', 1992년에는 힙합과의 결합을 시도한 'Doo-Bop' 같은 정통 재즈에서 많이 벗어난 음반을 발매하기도 하면서 시대에 따라 자신의 이미지와 음악을 꾸준히 변화시키면서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악 트렌드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 유연하게 변화하는 뮤지션의,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음악사에 남을만한 고전 명반, 'Kind of Blue'는 그런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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