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한 잔에 어울리는 고전 헤비메탈

Guns N' Roses - Best & Skid Row 셀프타이틀

by 핵보컬

메탈 씬에 속해서 음악을 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지금도 예전도 나는 스스로를 메탈키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더 이상 키드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서가 그 이유는 아니고, 소위 메탈을 좋아한다는 리스너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밴드들을 한 번도 그렇게까지 좋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메탈리카 앨범 중에 제일 많이 들은 음반이 'S&M'이고, AC/DC와 Megadeth도 'Back in Black'이나 'Symphony of Destruction' 같은 공인된 명반들보다는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의 사운드트랙으로 더 친숙하다고 하면 메탈 팬으로서 나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잘 못하는 건 즐기지 않는 성향이 있었다. 동년배 남자애들이 모두 좋아했던, 소위 구기종목이라 하는 것들에 취미가 없었던 이유도 내가 잘 못하기 때문이었고, 한 두 번 해보고 계속 친구들한테 지는 게 짜증 나서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빠르게 접었다. 변성기를 지독하게 겪은 뒤로 음역대가 높게 올라가지 않는 편이었기에 대한민국 락 보컬의 실력의 척도와 같은 'She's Gone' 같은 노래를 싫어하게 되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고음 보컬이 돋보이는 경향이 있는 70, 80년대의 헤비메탈을 잘 듣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X-Japan보다는 ONE OK ROCK을 더 좋아하고, 장발에 가죽 차림으로 무대에 오를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냥 쓰고 독하기만 했던 위스키의 향도 가끔 그리울 때가 있듯이, 요즘은 고전 헤비메탈이 이따금 듣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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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났거나 고음이 잘 올라가는 보컬이었다면 아마 건즈 앤 로지즈와 스키드 로우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화 캐릭터를 연상하게 하는 멤버들의 화려한 비주얼, 현란한 연주가 돋보이는 어레인지, 과격한 이미지와 무려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뮤비에 등장시키는 스케일까지 멋진 점이 많은 팀들이며, 상대적으로 짧은 전성기와 평론가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밴드라는 점도 뭔가 내가 좋아하는 뉴메탈 팀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전성기 시절 정립한 '잘생긴 나쁜 남자' 이미지가 멋져 보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LP 컬렉션을 뒤적거리다가 스키드 로우의 셀프 타이틀 앨범을 발견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지금은 클래식만 들으시는 아버지가 예전에는 이런 음악도 즐기셨던가 하는 생각에 여쭤봤더니 본인은 이런 걸 산 기억이 없다는 말씀만 반복하시는데 사지도 않은 음반이 우리 집에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하여튼 이들의 데뷔 앨범인 'Skid Row'는 한국의 메탈 매니아들에게는 밴드의 베스트 트랙 모음집이나 다를 바가 없는 음반이다. 'Youth Gone Wild', '18 & Life', 'I Remember You'까지 수려한 발라드부터 와일드하게 내달리는 트랙까지 이들의 팬이라면 명곡으로 뽑는 트랙들이 이 앨범 하나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턴테이블에서 이따금 나는 잡음까지 자연스럽게 빈티지한 멋을 더해주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 없이 재생하는 내내 밴드의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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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앤 로지즈는 2004년에 발매된 'Greatest Hits'라는 베스트 앨범이 있지만 우리 집에 있는 건 표지에 중국말이 적혀 있는, 정식판이 아닌 듯한 베스트 앨범이다. 정발 된 음반이 아닌 것 같지만 트랙리스트만은 'Don't Cry', 'Welcome to the Jungle', 'Sweet Child O' Mine' 같은 이들의 명곡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고 음질도 크게 나쁘지 않은 듯해 만족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다소 필요 이상으로 긴 것 같은 기타 솔로와 액슬 로즈 특유의 독창적인 창법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겠으나 음악 취향이 살짝 넓어진 지금은 명곡은 명곡답게 그 가치를 인정하고 즐길 만하지 않나 생각한다.


뉴메탈, 펑크, 얼터너티브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이제는 가끔씩 고전 헤비메탈을 섞어서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맥주나 와인을 더 좋아하고 친구들과는 주로 소주를 즐기지만 가끔씩은 위스키도 조금은 마시듯이 고전 헤비메탈 명곡들도 살짝씩 듣다 보면 이제는 그 진가를 조금은 알 듯하다. 게다가 실제로도 림프 비즈킷이나 콘보다는 건즈 앤 로지즈와 스키드 로우가 위스키와 함께 즐기기에는 더 어울리는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헤비메탈 장르의 한 앨범을 진득하게 쭉 듣고 즐기기는 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명곡들을 쭉 즐기는 것은 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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