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나를 사로잡은 단 하나의 목소리

Amy Winehouse 1, 2집

by 핵보컬

한창 신촌 향레코드를 왔다 갔다 할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곡 하나가 귀를 사로잡은 정도를 넘어서서 묘하게 소름이 돋길래 직원에게 “이게 누구 노래예요?”라고 물어보았다. “이거, 에이미 와인하우스에요.”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 그에 대한 이미지는 화장 진하게 한 채로 ‘노~노~노~’하는 인상 쎈 여가수 정도였기에 ‘아, 보기보다 꽤나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직후 직원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오늘 죽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바로 그의 1, 2집을 모두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11년 7월 23일 만 27세로 사망했다. 2집에서 보여준 짙은 화장과 깡마른 몸, 엄청난 높이의 킬힐과 독특한 패션 센스 때문에 굉장히 센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후에 알려진 본모습은 갑작스러운 스타덤에 당황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스트레스 때문에 점차 스스로를 망가뜨린 예민하고 여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얼핏 기억하기에도 여러 잡지와 토크쇼에서 그를 가리켜 ‘그 어떤 명품을 걸쳐도 노숙자의 누더기옷처럼 보이게 만드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비웃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아마 이런 것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1집 Frank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차다는 것이다.

2집이 하나의 일관된 컨셉을 잡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앨범이라면 1집은 의욕 넘치는 어린 뮤지션의 다채로운 종합선물세트이다. 재즈, 알앤비 등의 여러 장르가 트랙별로 각기 다른 색깔을 드러내며 청자의 귀를 사로잡고, 마치 ‘나는 이런 걸 다 잘 부를 수 있어.’라고 뽐내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Stronger Than Me’, ‘Fuck Me Pumps’ 같은 싱글 컷 트랙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트랙들은 ‘(There is) No Greater Love’, ‘I Heard Love is Blind’ 같은 무드 있는 넘버들이다.


좋게 보자면 다채롭고 나쁘게 보자면 다소 산만한 느낌의 1집에 비해 2집은 전체적으로 컨셉과 느낌이 일관되게 흘러간다. Marc Ronson의 프로듀싱으로 빈티지 소울 느낌의 레코드라고 볼 수 있는데, Raphael Saadiq의 ‘The Way I See It’이나 Duffy의 ‘Rockferry’, Mayer Hawthorne의 앨범들과 결이 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2집이 2006년, 나머지 음반들이 2008년 즈음에 발매된 걸 보면 이 앨범이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일관된 분위기로만 밀고 나가기에 오래 들으면 조금 물리는 느낌도 있다. ‘Rehab’, ‘You Know I’m No Good’ 같은 트랙들은 당연히 좋은 곡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Deluxe version의 CD2에 수록된 ‘Love is a Losing Game(Original Demo)’이다. 처음 향레코드에서 나의 귀를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 이 곡인데, 최종 버전과는 다른 날것의 느낌으로, 1집에서 스스로의 실력을 자랑하기에 바빴던 그녀의 보컬이 좀 더 원숙해진 상태로 그 어떤 프로듀싱의 도움 없이 듣는 이의 주의를 온전히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트랙이다.

지금까지도 그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Adele과 Lady Gaga와 함께 현대 팝의 3대 디바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기에 그녀의 죽음은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날 내가 향레코드에 방문해서 그 노래를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평생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남들은 좋아하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는 쎈 언니 아티스트’ 정도로 머물렀을지도 모르기에 이따금 ‘Love is a Losing Game’의 데모 버전을 들으며 그녀의 목소리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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