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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른씨 Apr 27. 2021

직장에서 만난 도른씨 Ep.2

‘성희롱’에 대하여

직장 내 성희롱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앞으로도 회자될  나의 첫 직장에서는 술 미팅(이라 쓰지만 접대)이 잦았다. 마케팅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당기기 위해 거래처 미팅을 나갈 때면 혹독한 외모 평가를 들을까 늘 마음을 졸이곤 했다. 모 방송국과의 첫 미팅에서 들은 첫 마디는 “이전 담당자 보다 못생겼는데?”였다. 이전 담당자는 보기만 해도 술이 술술 넘어가게 생겼었다는 둥, 사비를 털어서라도 마케팅 비용을 더 주고 싶었다는 둥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나와 함께 간 팀장의 언행이었다. 접대용으로 가지고 간, 병이 예쁜 일본 술을 나를 뺀 둘 만 나눠마시며 “예쁜 술은 예쁜 사람만 마시는 거다”라고 나보고는 소주만 먹으라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차별에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술이 들어가니 본격적으로는 얼굴 평가를 넘어 몸매 평가가 시작되었는데 정말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싶었다. 다음날 팀장에게 용기내어 어제 일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였을 때, 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술에 취해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만취 상태에서 실수로 격한 농담을 던진 걸로 기분 나빠하지 말라며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두 번째 직장에서 또한 더 기가 막힌 성희롱을 경험하게 되었다. 신고하기에는 몹시 애매한 동성에게 당한 성희롱이었다.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으면 내 허락 없이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남자친구가 허리를 잡고 하면 좋아하겠다는 둥 입에도 올리기 민망한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며 사이즈를 묻기도 했으며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튼 날이면 남자친구랑 좋았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없으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게 불쾌하다고 거듭 말했지만 같은 여자끼리 농담하는 건데 뭐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냐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칭찬이랍시고 한 말도 듣는 이가 불쾌감을 느끼면 엄연한 성희롱인데 왜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지 의문이 들 때도 많았다. “목선이 가늘고 예뻐서 목걸이가 잘 어울리겠다”, “향수 바꿨나, 전보다 지금이 더 홀리는 향기다” 등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와 친하지 않은 이성이 내 신체 일부를 유심히 보고 저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과, 나에게서 나는 향기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불쾌할 따름이었다.


‘성희롱’은 정말 답이 없다. 선을 넘은 듯 안 넘은 듯 판단하기가 애매하거나, 따지기엔 농담 혹은 칭찬이랍시고 되려 나를 예민 종자로 몰아가는 경우들이 많다. ‘성희롱’인지 자각 못하고 저지르는 도른씨들 덕분에, 나는 기꺼이 예민 종자가 되었다. 성적 농담 혹은 칭찬을 던지기엔 가깝지 않고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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