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하게도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학교는 방학을 앞둔 시점, 수련원 A동과 B동이 모두 예약이 가득 찼다. 학생은 500여 명인데, 청소년 지도사의 수는 10명이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도 진행해야 하고, 당직도 서야 하고, 인솔도 해야 하고, 안전관리도 필요하다. 어떻게든 돌린다면 돌릴 수 있지만, 문제는 연장 근무를 한 인원과 당직자까지 다음 날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인솔과 안전 관리, 당직을 맡아줄 사람들이 필요했던 찰나에 지도사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받아 한 달 동안 나도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야간 당직 근무를 했다. 20분에서 30분마다 각 방에 아이들이 얌전히 꿈나라로 떠났는지, 들어가려는 친구들을 다시 깨우는 수문장 역할의 친구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며 순찰을 돈다. 특이점이 있으면 기록한다. 특정 시간이 되면 각 방에 에어컨을 끄고 조용히 취침하는 방부터 차근차근 문을 닫아준다. 아이들의 수가 많아서 중간중간 아픈 친구들이 나오면 아이들의 증상에 맞는 상비약을 처방하고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친구들은 전문 지도사와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 후 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수련원은 좋은 추억을 만들고, 놀기 위해서 오는 것이기에 단잠을 마다하고 고군분투하는 친구들도 있다. (심지어 프로그램 시간에 자고, 이틀 연속으로 밤을 새는 친구들도 있다.) 매점이 사용 가능한 시간에 에너지 음료를 연달아 마시고는 결국 밤에 복통을 호소한 친구도 있었다. 의지는 거대했으나, 배는 배대로 아프고, 잠은 잠대로 오지 않아 꽤 고생했던 친구로 기억에 남았다.
방에서 사고가 났을 때 지도사가 빠르게 알기 위해서일까, 화재와 같은 위급 상황에 아이들에게 빠르게 대피를 전달하기 위해서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시설 자체가 신축, 구축과 관계없이 방음이 뛰어나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잠시라도 방치하면 옆 방도 아이들도 꿈나라에서 돌아와 떠들기 시작하고 이내 전염병 마냥 빠르게 확산된다.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의 초입부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야간 기상자(?)들은 옆에 친구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에 생기와 같은 광기를 가득 머금고 초롱초롱해진다. 나의 조용하고 안락한 당직 근무는 그렇게 기약 없이 사라져 버린다.
잠을 못 자는 아이들은 종종 복도로 나와서 "선생님 심심하실 것 같아서요" 라고 능청을 떨며 함께 근무를 서준다. 서른이 다가오는 시점, 나도 중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내 앞에 아이와는 세월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이제는 오히려 어린 친구들보다는 윗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아저씨, 아줌마라고 생각하던 분들도 술 한 잔 기울여 보면 형, 누나가 되어버린다. 아, 물론 직장 상사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예외로 두겠다.
나의 학창 시절도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은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설레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잠이 오지 않아서 이불을 발가락으로 곰지락거리고, 시간이 지나 미적지근해진 베개를 뒤집어 베기도 했다. 이런 감정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시절처럼 자고 일어나면 피곤함이 사라지는 성장기 특유에 능력은 사라지고, 푹신한 베개에 누우면 불가항력으로 금방 잠에 빠져든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행 하루 전날이면 빠뜨린 짐은 없는지 자꾸 걱정이 든다. 내 작은 여행용 가방이 뚱뚱해질 때까지 짐을 먹여서 힘들게 잠근 지퍼를 불안감에 결국 다시 열게 된다. 그리고 이내 안심하고 다시 온 힘을 다해 잠그고 나면 책상 위에 충전기나 칫솔 따위를 마주하게 된다. 뽑기 기계가 내 돈을 먹고 침묵할 때와 같은 애매한 분노가 일어난다. 이게 흔히 말하는 식빵은 언제나 잼이 발라진 면으로 떨어진다는 불변의 법칙일까?
‘아... 신이시여, 어찌 21세기에 사는 제가 충전기를 챙기지 않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게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