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는 그때 CEO와 내전을 벌였다.
CEO와 COO가 회사 내부의 조직원들과 내전을 벌이는 상황은 무려 2021년까지 이어졌다. 대부분 셰릴 샌드버그가 선발했고 구성한 조직들이었다. 대부분 마크 저커버그와 갈등을 빚었다. 보안팀 다음 희생자는 시민청렴팀이었다. 시민청렴팀은 2016년 대선처럼 페이스북이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팀장은 사미드 샤크라바티가 맡았다. 사미드 샤크라바티를 구글에서 스카우트한 건 역시 구글 출신인 셰릴 샌드버그였다.
사미드 샤크라바티는 MIT 출신의 인공지능 개발자였다. 구글에선 검색엔진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더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2016년 대선의 아수라를 해결한 적임자처럼 보였다. 사미드 샤크라바티가 이끄는 시민청렴팀의 목적은 페이스북에 만연한 가짜 정보와 혐오 발언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외부 세력의 간섭이나 오용을 막을 방법을 찾아서 페이스북을 고치는 것이었다. 시민청렴팀 덕분에 페이스북은 2018년 중간 선거에서만큼은 2016년 대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내부의 적이었다. 사미드 샤크라바티를 비롯한 시민청렴팀은 언제부턴가 자신들이 블루 안의 배신자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블루는 메타 안에서 페이스북을 부르는 별칭이다. 샤크라바티가 정한 시민청렴팀의 구호는 이랬다. “우리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시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
대외적으론 멋지지만 대내적으론 밉상이 되기 십상인 말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결국 언제부턴가 사미드 샤크라바티가 최고경영진한테 불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시민청렴팀은 페이스북을 고칠 해법을 제시했지만 마크 저커버그는 반대했고 셰릴 샌드버그는 방관했다.
시민청렴팀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것으로 확인된 수천 개의 계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CEO와 COO는 거부했다. 2017년 러시아 스캔들과 2018년 데이터 스캔들을 겪고 나서도 페이스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건 CEO와 COO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2019년 시민청렴팀에 새롭게 합류한 서비스 개발자 프란시스 호건에 의해 2021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프란시스 호건은 2021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과 CBS 〈60분〉을 통해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자로 등장했다.
프란시스 호건은 시민청렴팀에서 메타가 어떻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저를 착취하는지 목격했다.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조작해서 사용자들이 더 자극적인 뉴스에 더 깊이 빠져들도록 유도했다. 그럴수록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이용 시간이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0대 아이들이 자신의 외모에 덜 만족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했다. 그래야 외모를 가꾸기 위해 더 많은 뷰티 상품을 소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미드 샤크라바티가 이끄는 시민청렴팀은 바로 이런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존재했다. 정작 마크 저커버그는 2020년 11월 대선이 끝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시민청렴팀을 전격 해체시켜버렸다. 이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2021년 1월 6일 벌어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과 페이스북의 방임이 낳은 참사였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다. 선거 불복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의회가 조 바이든 당선인을 차기 대통령으로 인준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의회 인준일인 2021년 1월 6일 아침 도널드 트럼프는 수천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중세 시대 결투 재판까지 언급되는 상황이었다. 선거 결과를 가르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결투를 벌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법이 아니라 폭력에 의해 정의를 가리자는 주장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외쳤다. “죽도록 싸워야 합니다.” 시위대는 의회 인준이 예정돼 있던 오후 1시를 기해 순식간에 경찰 방어선을 뚫고 의사당으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선봉에 섰던 시위대 한 사람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뉴욕타임즈》의 저널리스트 세실리아 강과 시라 프렝켈이 이제는 메타로 간판을 바꿔 단 페이스북이라는 빅테크 기업의 어두운 뒷모습을 고발한 책 《추악한 진실》에 따르면, 당시 페이스북 고위경영진은 워싱턴에서 매우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여기서 언급된 고위경영진은 당연히 CEO와 COO일 가능성이 높다. 정작 페이스북의 고위경영진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연결해서 더 나은 삶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연결돼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외면했다. 연결은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추악한 진실》은 한국에선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사실 《추악한 진실》에서 드러난 추악한 진실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젊은 창업자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자가 서로의 눈치만 보며 비겁하게 진실을 외면했다는 진실이다.
의사당 폭동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마크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는 직무 유기를 선택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셰릴 샌드버그를 무시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셰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셰릴 샌드버그는 마크 저커버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셰릴 샌드버그는 친구들에게 마크 저커버그의 뒷담화를 한다.
이미 방 안의 어른은 이제 뒷방의 늙은이가 됐고 새로운 방 안의 어른은 아직 어른스럽지 못했다. 페이스북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리더쉽이 페이스북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가 2021년 1월 6일 당일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직접적인 책임은 당연히 대중을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에게 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조차 법적으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정치적 책임조차지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했다.
마크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가 진짜 잘못은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던 시민청렴팀을 해체시켜버렸다는 점이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시민청렴팀의 활동을 용인한 시기는 정확하게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서 증언을 해야만 했던 때와 일치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8년 4월 미국 상원 법사위에서 2019년 10월 하원 금융위에서 2020년 7월 하원 법사위에서 증언했다. 거의 매년 워싱턴 의회로 불려나갔던 셈이다. 의회의 압박이 페이스북 안에서 시민청렴팀의 숨구멍이었던 셈이다.
역설적으로 의회에 불려나가는 일이 많아질수록 마크 저커버그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셰릴 샌드버그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성향인 셰릴 샌드버그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엔 워싱턴에 대한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그래서 마크 저커버그는 셰릴 샌드버그 대신 워싱턴의 페이스북 대관담당 부사장인 조엘 카플란에게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 조엘 카플란은 페이스북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언제부턴가 COO인 셰릴 샌드버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시민청렴팀을 해체시킨 것도 조엘 카플란이 이끄는 정책팀이었다. 진정한 빌런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조옐 카플란은 셰릴 샌드버그의 천적이었다.
조엘 카플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부실장을 지낸 공화당 정치인이다. 조엘 카플란은 전쟁보단 협상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자신을 콜린 파월식 공화당원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이라크 전쟁의 영웅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군장성 출신이면서도 네오콘 일색인 부시 행정부 안에서 비둘기파로 분류됐다.
조엘 카플란은 2011년부터 페이스북에서 대관담당자로 일했다. 조엘 카플란은 페이스북의 이익을 워싱턴에 전하는 역할도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엔 오히려 정반대의 역할을 더 많이 했다. 페이스북의 워싱턴 지부장이 아니라 백악관의 페이스북 출장소에 가까웠다. 셰릴 샌드버그는 트럼프 집권 이후 심화된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정치적 편향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COO로서 시민청렴팀 발족과 운영을 지지한 것도 그래서였다.
조엘 카플란은 시민청렴팀이 문제 삼는 계정들을 인위적으로 삭제할 경우 오히려 페이스북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청렴팀은 뉴스피드를 담당하는 팀과 협업해서 커먼그라운드라는 프로젝트를 혁신을 추진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디지털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벌일 수 있도록 하자는 기획이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필터 버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필터 버블은 사용자가 동의하는 주장과 선호하는 취향만 거듭 보여주는 알고리즘 때문에 결국 사용자 자신이 스스로한테 갇혀 버리는 상황을 말한다.
커먼그라운드 프로젝트를 좌절시킨 건 조엘 카플란이었다. 조엘 카플란은 커먼그라운드가 자칫 보수 지지층한테 불리한 여론을 만드는데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보이는 건 일부 고래 유저 때문이지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잘못 설계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페이스북은 어떤 식으로든 여론에 영향을 주는 행동을 하지 말고 중립적인 태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게 조엘 카플란의 주장이었다. 이건 확실히 마크 저커버그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마도 마크 저커버그도 사실은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먼그라운드 프로젝트가 폐기된 이후부터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조엘 카플란의 커먼그라운드가 됐다.
이때부터 페이스북 직원들은 카플란팀의 내부 정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종종 마크 저커버그한테 직통으로 항의 전화를 걸곤 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포스팅의 도달율이 낮다거나 가짜 뉴스로 분류됐다는 사실에 불만을 터뜨리기 위해서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심지어 마크 저커버그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마크 저커버그의 해명에 따라 실시간으로 포스팅 내용을 바꾸기까지 했다. 마치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미리 가이드를 한 것처럼 말이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그 누군가가 조엘 카플란일 거라고 수근거렸다.
대신 마크 저커버그도 트럼프한테 받은 선물이 있었다. 틱톡이었다. 틱톡은 숏폼 동영상으로 페이스북의 허를 찔렀다. 틱톡은 2019년 말 이미 누적 다운로드 15억 회를 넘어서고 있었다. 15초 길이 동영상을 내세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지루해하는 10대 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초반 분위기와 흡사했다.
틱톡은 독점주의자 마크 저커버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인스타그램처럼 틱톡을 사들이고 싶어했다. 틱톡의 운영사는 중국계 바이트댄스였다.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들었는지 몰랐던 인스타그램 창업자들과 달리 바이트댄스의 창업자들은 페이스북의 성공방정식을 학습한 상태였다.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는 것도 방법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9년 10월 백악관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인터넷 기업의 위협을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여론전을 위해선 마크 저커버그가 필요했다. 마크 저커버그도 틱톡을 견제하기 위해선 트럼프가 필요했다.
마침 도널드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중국 인터넷 기업이 미국 인터넷 기업을 위협한다는 프레임은 중국 인터넷 기업이 미국인들의 개인 정보를 훔쳐 중국 정부한테 제공한다는 프레임과 더해져서 틱톡 때리기로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의 파상 공세로 결국 바이트댄스는 항복 선언을 했다. 2020년 10월 미국 사업을 전면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사이에 마크 저커버그는 틱톡을 모방한 릴스를 출시했다. 물론 그 뒤엔 조엘 카플란이 있었다. 조엘 카플란이 실리콘밸리의 흑막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 뒤로 조엘 카플란은 페이스북의 팩트 체크팀 업무에도 광범위하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서 무엇이 팩트이고 무엇이 팩트가 아닌지 결정하는 건 조엘 카플란이었다. 분명한 팩트가 하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페이스북의 2인자는 셰릴 샌드버그가 아니라 조엘 카플란이었다는 사실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셰릴 샌드버그의 퇴장을 “한 시대의 끝”이라고 선언했다. 팩트 체크 결과는 달랐다. 한 시대는 이미 진작에 끝나 있었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크로스보더 테크미디어 더밀크에 연재했던 셰릴 샌드버그의 인물스토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