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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Sep 17. 2024

구영배의 순간 : 위시

구영배 큐텐 회장은 그때 위시를 위시해버렸다. 

2024년 7월 8일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 대금 미지급 사태에서 촉발된 큐텐 사태의 표면적인 원인은 지난 2월 13일 체결된 위시 인수 계약이었다. 위시는 2010년 구글 소프프웨어 수석 엔지니어였던 피터 슐체스키와 데니 장이 공동 창업한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초창기엔 제리 양 야후 창업자와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로부터 각각 190억 원과 500억 원을 투자 받을 정도로 잘 나갔다. 


위시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 소비자와 중국 판매자를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D2C 비즈니스였다. 2010년 위시 창업 당시만 해도 미중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미국 소비자들은 값싼 중국 공산품을 한창 누리고 있었다. 위시는 아마존보다 더 싸게 중국 제품을 살 수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인기를 끌었다. 위시 판매자 50만 명 중 94%가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을 정도였다. 


50만 명이 1억5000만 개 이상의 제품을 판매하면서 위시의 월평균사용자수는 1억8000만 명까지 증가했다. 덕분에 위시는 2020년 11월 나스닥 상장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판데믹의 수혜주였다. 정작 위시 주가는 나스닥 상장 이후부턴 추락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와 쉬인이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가속도까지 붙었다. 


위시는 미국에서 중국을 연결한다. 알테무는 중국에서 미국을 공략한다. 중국 현지에서 판매자를 머천다이징하는 알테무가 위시보다 더 싼 제품을 더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위시의 주가는 2023년 말 고점 대비 90% 넘게 폭락했다. 위시를 산다는 건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구영배 큐텐 대표는 위시를 인수한다. 큐텐과 위시의 운영사 컨텍스트로직 사이에 이뤄진 계약 규모는 1억7300만 달러로 알려졌다. 한화로 2400억 원 정도였다. 사실 큐텐이 컨텍스트로직에 실제로 지불한 현금은 발표 내용보다 훨씬 적은 2900만 달러였다. 한화로 400억 원이었다. 대신 큐텐은 위시의 현금성 자산 1억4400만 달러와 외상채무 1억6400만 달러를 모두 인수했다. 현금과 채무가 거의 1대 1인 거래였다. 400억 원을 주고 빚 2400억 원을 떠안는 대신에 현금 2000억 원을 확보한 것이다.


위시 인수의 진짜 목적은 위시가 가진 현금성 자산 2000억 원과 위시에 등록된 판매자 50만 명 몫인 정산 대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 있는 위시의 현금과 대금을 들여올 수만 있다면 한국의 이커머스 계열사들인 티몬과 위메프가 만성 적자로 인해 겪고 있는 자금 경색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영배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금을 동원했다. 지난 7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한 구영배 대표가 직접 시인한 내용이다. 구영배 대표는 위시 인수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대금 400억 원을 동원했지만 한달 안에 반환했다”고 주장했다.


큐텐의 위시 인수 작업이 마무리된 것은 2024년 4월 19일이었다. 정작 위시의 현금성 자산 2000억 원을 티몬과 위메프에 수혈하려는 계획은 틀어졌다. 대신 위메프와 티몬에선 판매자에게 제때 지급됐어야 할 정산 대금이 밀리기 시작됐다. 이걸 메우기 위해 위메프와 티몬에선 대규모 판촉 행사가 시작됐다. 티몬과 위메프로 유입되는 판매 대금을 증가시켜서 돌려막기를 하려는 것이 재무적 목적이었다. 


손해를 무릅쓰고 진행한 과판촉 행사는 결국 적자로 돌아왔다. 위메프와 티몬을 큐텐의 현금인출기처럼 이용할 결과였다. 위메프만 해도 2024년 4월 한 달 동안에만 130억 원의 적자를 입었다. 결국 위메프는 2024년 5월부턴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위메프 직원들 입장에선 구영배 대표가 시키는데로 장사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회사에서 내몰리게 된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은 티몬도 별다르지 않았다.


진짜 책임은 계열 이커머스들인 티몬과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의 판매자 정산 대금을 호주머니 돈처럼 꺼내 쓴 구영배 대표와 본사 큐텐에 있었다. 게다가 구영배 대표는 위시 인수를 위해 일시적으로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 대금을 유용한 게 아니었다. 구영배 대표는 14년 전인 2010년 4월 싱가포르에서 지오시스를 창업할 당시부터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오가는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정산 대금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오시스는 세간엔 큐텐 사태의 중심인 큐텐테크놀로지로 알려진 회사다. 2024년 4월 이전까지만 해도 큐텐테크놀로지의 이름은 지오시스였다. 구영배 대표는 지오시스를 이베이와 51대 49의 합작 법인으로 설립했다. 


지오시스는 오픈 마켓 이커머스의 핵심인 서비스 사이트와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개발 회사다. 판매자가 상품을 올리고 소비자가 상품값을 결제하는 거래 기능이야 말로 오픈 마켓의 알파다. 또한 그렇게 결제된 상품을 판매자로부터 소비자로 배송하는 물류는 오메가다. 구영배 대표의 큐텐 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2010년 창업한 IT회사 지오시스와 2012년 창업한 물류회사 큐익스프레스인 이유다.  


구영배 대표는 지오시스를 창업하고 반년 정도 뒤인 2010년 여름 무렵 큐텐 서비스를 시작했다. 큐텐은 팬아시아 오픈 마켓을 표방했다. 중국의 판매자들과 아시아의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가 본질이었다. 구영배 대표는 싱가포르를 베이스로 일본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 중국까지 5개 지역을 연결했다. 큐텐은 싱가포르 1위 오픈마켓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등극한다. 


지오시스를 창업하고 큐텐을 오픈한지 2년 뒤인 2012년 구영배 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창업해서 물류를 내재화한데 이어 중국 패션 커머스 M18을 인수하면서 확장 실험에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지오시스는 M18의 결제 시스템을 큐텐에 통합 관리하기 시작했다. 큐텐을 거치는 정산 대금과 M18을 거치는 정산 대금이 지오시스라는 한 통장에 꽂히게 만든 것이다. 이제 지오시스는 단순한 IT회사가 아니었다. 제각각인 정산 주기를 통합해서 큐텐의 대규모 자금을 관리하는 금융 회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큐익스프레스가 큐텐을 오가는 상품을 관리하는 회사라면 지오시스는 큐텐을 오가는 자금을 관리하는 회사가 된 것이다. 


지오시스와 큐익스프레스라는 양대축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건 판매량과 물동량의 증가였다. 구영배 대표는 한국과 아시아 각국에서 다양한 판촉 행사를 연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진출을 원하는 한국 판매자들을 모으거나 그 반대로도 마케팅을 했다. 역시나 점프대는 인수합병이었다. 2018년 큐텐재팬을 이베이재팬에 매각하면서 몸을 풀었다. 대신 큐익스프레스가 이베이재팬의 물류를 맡는 거래였다. 그런데 구영배 대표는 큐텐재팬 매각 대금으로 지오시스의 이베이 지분 49%를 사들였다. 지오시스를 완전한 개인 회사로 만든 것이다.  


구영배 대표는 2019년 11월 인도 3위 오픈마켓 샵클루스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M&A에 시동을 걸었다. 판매자 70만 명에 소비자 6000만 명인 샵클루스는 지오시스가 통합관리하는 정산 대금량을 폭증시켰다. 샵클루스의 물류 자회사 모모에도 큐익스프레스에 통합시키면서 물동량도 크게 늘렸다. 그런데도 지오시스와 큐익스프레스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이때 코로나 판데믹이 터졌다. 이동이 제한되면서 물동량이 폭증했다. 덕분에 2021년 3월엔 쿠팡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구영배 대표 역시 2021년 9월부터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 준비에 돌입했다.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목표 시총은 10억 달러였다. 상장실무를 맡은 골드만삭스는 상장목표일은 2024년 5월로 제시했다.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을 성공시키려면 더 많은 물동량이 필요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인수합병이었다. 마침 지오시스라는 저수지에는 큐텐 그룹의 대규모 정산 대금이 흘러들고 있었다. 


구영배 대표의 첫 번째 관심사는 이베이코리아였다. 정작 2021년 7월 예비입찰에만 참여하고 본입찰에는 불참했다. 이베이코리아의 물동량과 대금량은 매력적이었지만 3조 원이 넘어서는 가격이 부담이었다. 구영배 대표는 티몬으로 시선을 돌렸다. 티몬은 2017년 창업자 신현성 대표가 물러난 뒤부터 끊임없이 매각설에 시달려왔다. 구영배 대표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퇴각한 지 1년 만인 2022년 9월 티몬을 인수합병한다. 방식은 지분 스왑이었다. 큐텐 싱가포르 본사의 지분 32.24%와 티몬 지분 81.74%를 맞교환하는 방식이었다. 1대 2 비율의 맞교환이 가능했던 건 큐텐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이라는 희망 지렛대가 있어서 가능했다. 덕분에 구영배 대표는 현금 0원으로 티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현금을 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티몬은 만성 적자 상태였다. 구영배 대표가 티몬을 인수한 해인 2022년 말 기준 티몬의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 6386억 원을 기록했다. 6386억 원이라는 누적 적자를 이제는 새 주인 구영배 대표가 메워야만 했다. 지오시스는 인수 직후 티몬의 정산 시스템을 통합했다. 지오시스의 재무팀이 티몬의 자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티몬은 큐텐 그룹의 판매유통조직으로 전락했다. 이때부터 지오시스 저수지로 들어오는 큐텐 해외 계열사와 티몬의 정산 대금이 칵테일된 것으로 보인다. 방식은 계열사간 자금 대여 방식이었다. 


구영배 대표는 2023년 3월엔 야놀자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를 1871억 원에 인수했다. 사실 구영배 대표는 계약금 10%만 지불했다. 나머지는 큐익스프레스의 주식을 담보로 잡았다. 이것도 나스닥 상장이라는 지렛대 덕분이었다. 불과 한달 뒤인 2023년 4월엔 위메프를 인수했다. 티몬과 마찬가지로 지분 스왑 방식이었다. 덕분에 큐텐 그룹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4위로 올라섰다. 문제는 이렇게 산하 이커머스들이 늘어날수록 매달 감당해야 하는 적자도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대신 매달 지오시스 저수지로 흘러들어오는 정산 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물론 큐익스프레스의 물류량도 증가했다. 


구영배 대표의 큐텐 그룹은 이렇게 인수한 티메파크의 정산 주기를 최대한 늘렸다. 최단 30일에서 최장 70일까지였다. 각각의 정산 대금들의 정산 주기가 길면 길수록 이걸 통합 관리하는 지오시스한테 유리한 건 당연했다. 대신 티몬과 위메프의 중개수수료는 업계에서 가장 낮게 유지했다. 업계 평균인 15%의 절반 수준인 9% 안팎이었다. 지오시스 안에선 티메파크와 큐텐 싱가포르와 중국 M18과 인도 샵클루스를 오가는 복잡다단한 자금 대여 거래가 이뤄졌다. 이런 칵테일 과정을 거치다보니 판매자한테 돌려줘야 하는 정산 대금이라는 자금의 성격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월 29일부터 큐텐 그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 검찰과 경찰은 구영배 대표와 큐텐그룹 재무본부장이 이런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 10월 11번가 인수전은 구영배 대표한텐 일종의 승부처였다. 2024년 5월이 목표인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구영배 대표는 11번가 인수 역시 티몬과 위메프처럼 주식 스왑 방식으로 추진했다. 11번가와 큐텐을 합병하고 11번가의 운영사 SK스퀘어가 큐텐의 2대 주주가 되는 협상이었다. 11번가 인수전이 실패하자 티메파크는 오히려 공격적인 할인 정책으로 거래량을 늘려잡기 시작했다. 겉으론 큐익스프레스의 물동량 증가가 목적이었지만 속으론 지오시스의 자금량을 늘리려는 목적이었다. 대신 과판촉으로 티메파크에는 적자가 더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11번가의 물동량과 정산금을 놓친 결과였다.      

결국 구영배 대표는 2024년 접어들면서 위시 인수라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위시의 현금과 위시의 대금과 위시의 물동을 위시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구영배 대표의 위시 인수는 지오시스와 큐익스프레스를 기둥으로 쌓아온 큐텐 그룹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지오시스가 통합관리해온 자금 흐름이 끊기면서 티몬과 위메프에선 악몽과 같은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다. 여름 휴가를 가지 못한 소비자들은 티메프 앞에서 밤을 세웠다. 많게는 수억 원 이상이 물린 판매자들은 폐업 절차에 들어갔다. 구영배 대표는 지난 7월 26일 큐익스프레스 CEO에서도 해임됐다. 큐익스프레스의 재무적 투자자들이 구영배라는 연결 고리를 잘라서 큐텐 사태의 방화벽을 세운 것이다.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해 벌인 일이었지만 이젠 공허한 일이 됐다. 


구영배 대표는 2006년 지마켓의 나스닥 상장을 성공시킨 지마켓 신화의 주역이다. 지마켓은 2009년 이베이에 인수될 때까지 2000년대의 쿠팡이었다. 그렇지만 구영배 대표는 지마켓의 오너는 아니었다. 인터파크의 사내벤처팀장으로서 지마켓을 창업했기 때문이었다. 구영배 대표는 한국에서의 10년 경업 금지 조항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큐텐을 창업했다. 아시아의 지마켓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구영배 대표가 제2의 지마켓을 꿈꾸던 그 해 여름 한국에선 쿠팡이 창업됐다. 결과적으로 제2의 지마켓은 큐텐이 아니라 쿠팡이었다. 


구영배 대표는 국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아마존도 이베이도 쿠팡도 내가 만든 지마켓을 모델로 한다”고 말했다. 구영배 대표가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지마켓은 아마존과 쿠팡과 달리 적자의 데스벨리를 넘지 못한 채 엑시트를 선택했다. 아마존과 쿠팡과 달리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영배 대표는 큐텐으로 레이스로 돌아왔지만 판매자 정산 대금을 활용한 유사 금융 회사가 되려고 했고 물류회사를 별도로 상장시키려고 했다. 아마존과 쿠팡이 수십년 걸려서 건넌 사막에서 지름길을 찾은 것이다. 결과는 지마켓 신화의 붕괴였다. 판매자들의 피눈물과 소비자들의 아우성이었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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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배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했던 칼럼의 원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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