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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Dec 14. 2023

비건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채소과일식을 하면서도 솔직히 고기가 당겼다.

특히 추운 겨울이 되니 안 그래도 저혈압에 냉한 몸이 더 차가워졌다.

찜질팩을 한 몸처럼 하고 다니지만 그때뿐이었다.

감기라도 걸려 목이 칼칼하면 뜨끈한 국밥 국물로 목을 지지고 싶었다.

몇 주 전에는 남편이 감기몸살이 온 날 수목원에 저녁 산책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수목원 바로 정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흑돼지구이 집에 있는 광경에 우리 부부는 언제나 생경함을 느꼈는데 그날따라 정문 옆에 붙여놓은 '점심특식 감자탕' 홍보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밤 9시가 넘어 늦은 시간이라 식당은 이미 끝났고, 결국 집에 가는 길 해장국집을 찾아 목을 지지고 나서야 들어왔다.


4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서 우리 부부는 바로 식단을 바꾸었다.

이것저것 가공식품에 저렴한 고기들을 자주 식탁에 올렸었는데, 자연치유 등 관련 공부를 하면서 현미밥채식 위주로 먹기 시작했다. 살은 운동도 안 했는데 점점 빠지고 남편과 나는 생애 최저 몸무게를 경신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살이 빠지니 안 돼 보인다며 다시 찌기를 권했지만 몸이 가벼워지니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요즘도 그때 이야기를 하며 다시 그렇게 먹어볼까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우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차리고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먼저일 거다.

당시에는 암을 고쳐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먹는 것에 올인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좋은 것을 먹는 것이 치료의 하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치료법인 것 같다. 약식동원이라는 말처럼)

그 후로 회식을 하거나 사람들과 모임을 하다 보면 고기도 먹고 피자나 치킨도 먹을 일이 생겼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었다.

비건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여자 연예인이 자신은 비건이라고 밝혔는데 어느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뭇매를 맞았다. 사실 그녀가 그곳에서 고기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것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굴레를 씌우는 것을 보면 완전 비건인이 되기보다 살짝 발을 뺀 비건지향인이 되고 싶어 진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핑곗거리를 만드는 얄팍한 속임수임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다.


최근 송년회 모임에서 지인이 닭고기 수프를 해왔다. 목감기에도 걸리고 추운 겨울밤 따끈한 것이 먹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한술 뜨려는데 건너편에 앉아있던 또 다른 지인이 자신은 비건이라 먹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차차. 사실 나 또한 채소과일식을 하며 고기, 우유, 생선 등을 멀리할 마음이었는데 음식을 만들어온 이의 정성에 누가 될 까봐 내 의지를 저버린 것이다.

다른 이를 위해 나의 신념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다시 한번 느끼며 그날은 바닥까지 싹싹 긁어 수프를 먹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비건.

사실 그 불편함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비건.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다.


다시 의지를 불끈 세워 채소과일식과 현미밥채식을 철저히 해보려고 한다.

비건 지향(向)인이 아닌 비건 지행(行)인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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