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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Dec 07. 2023

남의 살이 더 맛있다?

비건지향인은 비록 못되더래도

어렸을 때는 고기를 한 달에 한번 먹었다.

가족 모두 고기보다는 나물반찬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주 가끔 경양식집에 가서 돈가스를 썰어본 적도 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삼겹살 집에 다녀오면 속이 느끼해서 꼭 엄마에게 얼큰한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20대가 되어서는 국밥에 미쳐있었다.

그중에 최애는 순대굿밥이었는데 생리 중엔 일부러 선지를 듬뿍 넣어서 먹곤 했다.

내장탕, 도가니탕은 물론이거니와 국밥마니아는 음주가무와 함께 빠질 수 없는 해장국 러버였다.

고기구이보다 물에 빠진 고기를 더 좋아하던 나는 언제부턴가 개고기도 먹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객기도 있었던 것 같다. 나 이런 것도 먹을 수 있어하는 먹부림 같은 것.

먹는 것으로 자랑하는 짓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인데도 그때는 뭐든 잘 먹으니 좋은 거다 위안했다.


직장생활 10년 차가 넘어가면서 야근하며 먹는 국밥이나,

회식하며 먹는 삼겹살, 갈비구이가 빈번했다.

어쩔 때는 점심때도 두루치기나 돈가스를 먹고 저녁까지 그렇게 먹어대니 속이 남아나질 않았던 것 같다.

나름 살은 안 찌려고 밥은 반공기만 먹거나 반찬을 더 먹으려 했으나 몸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러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이 식단이니 만큼 자주 먹던 고기를 멀리했다.

그랬더니 두 달에 5킬로가 자연스레 빠졌다.

하지만 진단받은 지 3~4년이 지나니 스멀스멀 남의 살이 먹고 싶어졌다.

가끔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은 금방 해이해졌고, 수육은 괜찮아, 좋은 고기는 괜찮아하며 횟수가 잦아졌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최근 채소과일식을 시작하며 음식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하비 다이몬드 박사와 함께 로푸드(Raw Food) 운동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는 더글라스 그라함의 <산 음식, 죽은 음식>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 인간은, 죽은 토끼를 보고 사자처럼 침을 흘리지 않는다."


인간이 육식동물이 아닌 과일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를 아주 조목조목 잘도 설명해 주셨다. 운전을 하며 오디오북으로 듣는데 자꾸만 피 흘리며 죽어가는 돼지와 소, 그리고 식용개까지 생각났다. 갑자기 그걸 먹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진저리가 쳐졌다.

고기를 가공시키고 이름을 바꾼 상태로 섭취하는 인간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남의 살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나 무서운 사람이구나... 혼자 소름이 끼쳤다.

물론 이래놓고 또 며칠 뒤에 흘러내리는 스테이크 육즙을 보며 침을 흘릴지도 모른다.

보양식에 삼계탕이지 하며 복날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미 아는 그 맛이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기 대신 과일을 더 좋아하는 혀로 바뀐다면 가능성은 있다.

우선은 내 혀를 길들이는 수밖에 없다.


신(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먹고살아라'라고 명령했는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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