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증 환자의 눈물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참 복스럽게도 먹네."
어릴 적부터 잘 먹는다고 칭찬을 받았다.
특히 엄마는 본인이 열심히 만들어 준 음식을 남김없이 싹싹 먹는 나와 친오빠를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 그릇 더를 외치면 살짝 혼내는 듯하다가도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강박증에 우울증이 있던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는 유일한 방법은 "밥을 잘 먹는 것"이었다.
사실 태생적으로 비위가 약하고 못 먹는 음식이 많은 편이다.
어릴 땐 마요네즈와 요플레를 못 먹었다.
마요네즈를 못 먹으니 과일 사라다를 케첩에 무쳐주시던 게 생각난다.
마늘과 파, 고기에 붙은 비계도 먹으면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몸에 좋다며 억지로 먹이게 하셨다.
입에 물고 물을 한 컵 마셔 겨우 넘겼다.
눈물이 찔끔 났다.
학창 시절에는 엄마의 대식 위주 습관을 고수하느라 배통은 일반 성인 남자정도로 커져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꼭 누워있어야 했다. 너무 많이 먹어 움직이면 신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대학교는 엄마의 품을 떠나 기숙생활을 했다.
엄마가 없는데도 과식하는 습관은 그대로였다.
알바를 끝내면 밤 12시가 넘어도 편의점에서 김치 왕뚜껑에 볶음김치, 전주삼각김밥을 먹어치웠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그래도 헛헛하면 빵빠레까지 먹었다.
폭식과 과식, 야식은 확실히 습관이다.
습관은 잘 바뀌지 않는다.
몇 번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하거나 기분이 우울하면 스멀스멀 다시 음식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다.
아이 엄마가 되고 나이가 마흔 줄에 들었는데도 여전히 음식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렵게 산 것도 아닌데 어릴 때 엄마에게 이쁨 받기 위해 먹기 시작했던 음식 습관이 커서도 영향을 끼쳤다. 깨작거리며 먹으면 복이 나가니 퍽퍽 숟가락으로 씹지도 않고 삼키는 모습으로 맏며느리감임을 과시했다.
3년 전 야근을 하며 저녁밥을 식당에서 먹고, 또 허기져 사발면 하나를 순삭 하는 내 모습을 깨닫고 이건 병이다 싶었다. 다행히 토하거나 하는 거식증은 아니지만 암진단을 받을 때도 최고 몸무게를 찍을 때라 비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다.
유튜브에 거식증에 대해 알아보다 어떤 예쁘장한 여자 유투버의 이야기를 듣다가 혼자 있던 사무실에서 울음이 터졌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 먹어도 돼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울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당시 무언가 힘든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회피하고 싶어 1차원적인 욕구를 충족했던 것이다.
먹을 수 있고 먹으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니 입에 넣고 또 넣었다.
하지만 다 먹고 나면 더 큰 우울이 밀려들었다.
악순환이었다.
거기다 폭식할 때 먹는 음식은 거의 정크푸드가 많다.
과일이나 현미밥을 폭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해 1월 건강한 다이어트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몸무게 인증과 식단 공유를 했다.
자꾸만 체중에 신경을 쓰고 몰래 나쁜 음식을 먹는 횟수가 늘어가는 것 같아 커뮤니티 리더님께 양해를 구하고 잠시 인증을 쉬기로 했다.
대신 먹고 싶은 것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라면도 먹고 싶으면 죄책감 없이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었다.
음식으로 치유를 받던 상황을 없애고 그냥 먹고 싶으니 편하게 즐기며 먹었다.
그랬더니 음식이 그냥 음식이 되었다.
더 이상 음식에 대한 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니 예전만큼 당기지 않았다.
점점 음식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그냥 편하게 먹는다.
물론 다시 다이어트 커뮤니티에 들어가 인증도 하고 공복 몸무게도 재지만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되면 서다.
방금 전 딸아이와 학교 앞 분식집에서 안성탕면 한 그릇을 둘이 나누어 먹었다.
강추위 날씨에 라면 국물이 몸 안에 들어가니 금방 따스해졌다.
괜찮다.
라면은 그냥 라면이다.
폭식증은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