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09 Day 8. 나헤라 - 산토 도밍고 21.2km
물집으로 인해 버스를 타고 하루를 쉬었던 어제, 많은 고민을 했다.
물집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물집이 나아진다고 해도 다시 걷는다면 물집이 다시 생길 수도 있고, 물집이 생길 때마다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걷기로 했다. 차라리 물집을 치료하며 계속 걷는다면, 물집이 굳은살로 변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물집을 치료하고, 약을 바르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붕대를 감고, 진통제를 먹고 걷기 시작했다.
한 번 아프고 나니, 무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까지 21km만 가기로 결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웃긴 게.. 매일 걷다가 하루 걷지 않았다고
물론 오르막길을 걸으면서는 '하.. 내가 왜 이 길을 또 걷고 싶어 했지...?' 했지만ㅋㅋ
그래도 어제 하루 쉬며 충전했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걸을 수 있음에, 그리고 단 하루치만 건너뛴 것에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만약 물집에 대한 걱정으로 레온까지 점프를 했거나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바꿔버렸다면(성당에 앉아 있을 때에, 이 걷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져 비행기 표도 잠깐 아주 잠깐 알아보기도 했었다.) 엄청 후회했겠지! 그러면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는 말에 대해서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 날씨도 햇빛도 길도 사람들도.
사실 길을 걸으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들도 많았지만 힘든 순간들도 많았다. 몸이 아프거나 끝도 없이 뻗어있는 길에 지치기도 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배낭 무게에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초반에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이 곳에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한 번으로 족해!'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었는데, 하루 쉰 것만으로도 이 길이 그리워지고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니 '이래서 산티아고에 몇 번씩 오는 사람들이 생기나 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완벽했던 하루. 그렇게 도착한 산토 도밍고!
산토 도밍고에는 200명 이상이 묵을 수 있는 아주 큰 알베르게가 있는데, 산토 도밍고에서 묵는 거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 알베르게에서 묵기 때문에 H와 나도 이 곳에 묵기로 하였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통제 덕분인지 산토 도밍고까지 일찍 도착하여서 씻고 난 후, H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산토 도밍고 산책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날씨도 좋고 마을도 예쁘고! 아주 모든 것이 행복한 하루였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들어와 행복하게 핸드폰을 하며 침대에서 뒹굴 뒹굴.
근데 정말 큰 알베르게라 거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 곳에 묵는다는 것이 사실인 양, 이 곳에서 그동안 만났던 순례자들 거의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수비리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로그로뇨까지 함께 걷다 헤어진 Y님과 J오빠 송별회를 함께 했던 외국인 멤버들, 그리고 어제 갑자기 버스를 태워 나헤라에 데려다 놓았던 J와 앞뒤로 배낭을 짊어지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E까지! 길에서 친해졌다가 헤어졌던 모두를 만나게 된 것이다! 특히 Y님은 너무나 잘 걸으셨기에 로그로뇨에서 헤어진 이후 다시 뵐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다. (식당에 Y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너무나 반가워 2층 침대에서 뛰어내렸다ㅋㅋ)
그렇게 모두 다시 만나 그동안 헤어져있던 시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해 먹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도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정말이지 너무나 즐거웠다.
만날 수 있을까, 못 만나더라도 어디선가 잘 걷고 있겠지, 하며 헤어졌던 사람들. 길을 걸으면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던 사람들을 이렇게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나 행복했다. 또한 만나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무엇이든 서로 나누는 이 길이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