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190410 Day 9. 산토 도밍고 - 벨로라도 23km

by YEON

함께 밥을 해 먹는다는 것.. 식구(食口)가 된다는 것.


그동안 여행도 적지 않게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빠르게 친해지고 동료애가 생기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 '함께' 걷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해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일상인 것들을 함께 해 가니까.

특히 함께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함께 밥을 먹는 인연들은 많아도, 함께 밥을 '해서' 먹는 인연은 많지 않으니까. 그저 식당에 가서 돈을 내고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재료를 사고, 손질하고, 함께 먹을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맛있게 만든 음식을 함께 즐기고, 함께 배부르고, 함께 공감하는. 그렇게 또 서로 힘을 내고 이 길에서 의지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함께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인 것 같다.


생장에서부터 좋은 인연들이 많이 있었고 함께 걷게 된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산토 도밍고에서부터의 일행들이 나의 순례길 메인(?) 일행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처음 만난 Y언니, J언니. 로그로뇨에서 헤어진 J오빠와 친구들도 나의 소중한 일행들이었지만, 순례길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행은 산토 도밍고부터의 일행이다. 아무래도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물론 이 일행들과도 산토 도밍고 전부터 함께 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에는 함께 걷지만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서로 쿨한 일행이었다랄까? 서로 부담 주지 않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근데 산토 도밍고에서부터는 달랐다.

출발 전 함께 할 도시와 알베르게를 정하고, 서로 속도가 달라져 함께 걷지는 않아도 중간중간 쉬게 되는 마을에서 서로를 기다리고, 중간에 헤어지더라도 먼저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씻고 기다리다가 함께 빨래를 하고,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함께 밥을 해 먹는 '식구'의 느낌.

나의 까미노 동지 H와 Y님, 오스프리 동지들!

어제 산토 도밍고에서 신나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같이 걷게 된 H와 Y님. 사실 우리 셋은 수비리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졌다가 운명적으로 택시를 타고 에스떼야에서 만났으며, 물집이 생기면서까지 로그로뇨로 함께 걸었음에도 서로 부담 주지 않으려(순례길 초반이었기에 '저 사람이 혼자 있고 싶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서로 조심하는 모습들이 많이 있었다.) 안부만 물으며 함께 걷다 헤어지기를 반복한 상황이었다. 근데 어제 알베르게에서 오랜만에 만난 뒤에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제 우리는 일행이다.'라는 느낌에 이때부터는 함께 아침을 먹고, 함께 묵을 숙소를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마 이제야 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었을까.

오늘 걷는 구간은 산티아고까지의 거리가 500km대 남는 구간이라 더욱더 힘을 내서 걸을 수 있었다. 아직 500km가 남은 것인데 꼭 500km를 걸은 것 마냥 얼마나 힘이 나던지!

그리고 이 날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월하게 걸을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근데 10시부터 비가 그치고 해가 나더니, 날씨도 더워지고 끝도 없는 길이 이어져서 무척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갖고 있던 생수도 미지근해져서 '아... 시원한 물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찰나. 저 멀리 스멀스멀 오던 트럭이 앞서 걷던 순례자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는 것이 아닌가? 뭔가 하며 보다 보니 내 손에 들려있는 시원한 생수! '와,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길에서 만나는 천사인가?' 했는데 알베르게 홍보였다.ㅋㅋㅋㅋ 더웠던 찰나 시원한 생수로 땀을 식히고 홍보 문구를 보니, 아니 오늘 묵으려 했던 알베르게였다! 원래 가기로 한 곳이었는데 센스 있는 홍보까지 받으니 알베르게에 대한 사랑이 더 샘솟았다 :)


그렇게 도착한 벨로라도의 알베르게는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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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벨로라도의 알베르게

주인의 애정이 곳곳에 담긴 아기자기한 내부와 넓은 응접실, 마당에는 수영장에 넓은 잔디까지! 게다가 음악까지 은은하게 흐르니 정말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던 알베르게에서, 편하게 씻은 후 빨래를 하려던 찰나에 알베르게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은 여기서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로그로뇨 WOK에서의 납치(?) 주인공 J였다. J는 일행들과 헤어지고 (그 일행들도 일정 때문에 레온으로 버스를 타고 점프했다.) 오늘 30km를 더 걸어, 벨로라도 다음 마을까지 간다고 해 아침에 작별인사까지 한 상황이었는데 이 곳에 들어오니 놀랄 수밖에! 게다가 표정도 별로 좋지 않기에 왜 그런지 물어보니, 길을 걷다가 핸드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나갔고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더 걷기가 싫어져 앞에 보이는 알베르게에 들어왔더니 우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너무 어이없는데ㅋㅋ 이 날부터 4명이서 함께 걷게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정말 대단한 인연인 것 같다 :)


그렇게 J까지 넷이서 함께 빨래를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이 날이 우리 4명의 일행이 처음 함께 밥을 해먹은 날이었고, 함께 먹은 홍합 파스타와 홍합탕은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함께 식구가 되던.. 첫 저녁이었다.

2019-04-10-18-09-52.jpg 처음으로 넷이서 함께 해 먹은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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