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인생에도
화살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190411 Day 10. 벨로라도 - 아헤스 28.1km

by YEON

내가 산티아고를 가겠다고 결심한 많은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었다. 그저 화살표만 따라 걸으면 되는 길이었기에 내 컨디션만 잘 조절하면 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누군가가 부르는 이름이니까.

돌로 만든 글자와 화살표들

오늘은 오르막 내리막 언덕들과 끝도 없이 펼쳐진 자갈밭이 이어진 날이었는데, 길을 걷다 보니 이렇게 돌로 만든 화살표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정말 안 위험해?', '나 길치인데 길 잃으면 어떡해?'였다. 그럴 때면 절대 위험하지 않고 (물론 밤에 돌아다니기, 귀중품 챙기기 등은 기본이니까) 길치도 길을 잃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화살표가 곳곳에 있다고 대답하고는 했다.


화살표,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의 상징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한국에서 길을 걷다 화살표를 보거나 노란 페인트가 묻어있는 나무만 보아도 그곳이 그리워졌었다. 왜 이렇게 산티아고를 그리워하나.. 하고 생각해보니 행복했던 시간들도 많았지만, 화살표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산티아고를 오기 전 나는 많은 선택에 지쳐있었고, 새로운 선택을 앞두고 산티아고를 온 상황이었다. 나의 선택에 따라서 이후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 아마 그 선택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잠시 도피를 한 것 같다. 그리고 도피처였던 산티아고는, 선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던 나에게 정말 최고의 장소였다. 그저 화살표만 따라 걸으면 되기에, 누군가가 나 대신 선택해주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우리는 현실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들을 맞이한다. 아침 출근길부터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어느 곳으로 가야 빠를지 선택하고. 출근해서도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효율적 일지 고민하고 선택하고. 제일 어렵다는 :) 점심메뉴 선택하기와 퇴근하고는 약속을 잡을지, 집에 가서 쉴지... 등. 또한 나처럼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인생에 대한 중요한 선택들도. 사소한 선택부터 중요한 선택까지.


물론 내 인생의 선택을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또한 누군가가 정해주는 삶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내 스스로 나의 인생을 선택하고 이끌어가고 싶으니까. 하지만 수많은 선택들 때문에 지칠 때면 "누군가가 '그냥 이렇게 해!'라고 정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는 한다. 그럴 때 내가 찾아간 곳이 산티아고였다. 산티아고의 화살표는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이 길을 따라서 걷기만 하라며 위안을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으며 생각했었다.

가끔씩은 내 인생에도 화살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몰랐다. 그저 걷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좋았던 것인지 다녀와서 알았다. 잠시만이라도 선택하지 않고 그저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쉴 수 있었으니까, 그 편함이 정말 '휴식' 같아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휴식을 바탕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선택에 도전하는 나를 응원해주고 믿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이나 무거운 현실에 지치고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능하다면 산티아고에 가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곳에 가면 조금은 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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