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190407 Day 6.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27.8km

by YEON

일찍 눈이 떠져 5시부터 준비를 시작한 아침.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잘까 하다가, 하필 2층 침대를 배정받은 상황이라 다시 침대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냥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다 하고 나니 6시 반..

어떻게 할까, 일행들을 기다릴까.. 하다가 혼자 출발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로스 아르코스에서 출발하면 순례길에서의 두 번째 대도시인 로그로뇨까지 걷는다. 하지만 거의 30km가 되는 거리기에 발 상태가 좋지 않던 나는 로그로뇨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언니들과 헤어진 후에 바로 좋은 일행들이 생겨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었는데, 아마 무의식적으로 혼자서 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온 길이었으니까.

그래서 함께 출발하자는 일행들에게 먼저 출발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출발하였다. 어쩌면 도망을 쳤던 것 같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참 좋고 즐거웠지만, 어차피 헤어지게 될 텐데 하는 바보 같은 생각과 또한 발이 아팠기 때문에 일행들이 나 때문에 속도를 늦추거나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일출

그렇게 오랜만에 온전히 혼자 걷게 된 시간. 너무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새벽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핸드폰 플래시를 의지해 걸어야 했고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너무 무서웠지만, 그 순간을 이겨 내고 나니 아무도 없는 길 위에 나 홀로 서 있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일출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조용했다. 참 즐거웠다. 오랜만에 혼자인 시간이 신나서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걸었다.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일행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잘 걷고 있으려나? 어디까지 왔으려나?' 그렇게 중간에 혼자 아침을 먹고, 얼굴만 아는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순례자와 통성명을 하면서 "그냥" 걸었다.

그러다 조금 이른 시간에 -만약 로그로뇨까지 가지 않는다면 묵기로 생각한 마을인- 비아나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떡할까, 여기서 출발하면 중간에 마을이 없어서 무조건 로그로뇨까지는 걸어가야 하는데, 9km를 더 걸을 수 있을까? 괜찮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단 눈에 보이는 바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보였다.

반가웠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너무나 그들을 반가워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그들을 벗어났음에도 이렇게 다시 만남에 반가워하고 있다니. 심지어 그 당황스러울 정도의 반가움으로,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비아나에서부터 그들과 함께 로그로뇨까지 걷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걷고 싶었기에.

정말 재밌었다. 함께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다 다시 '우리'라는 곳에 들어가니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발이 아픈 것도 까먹고 신나게 걷다 보니 결국 발에 무리가 왔다.

터널에서 멍하니..

하지만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고, 로그로뇨에서 함께 묵을 알베르게를 정한 뒤에 H와 함께 일행들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등산화를 벗고 터널에 앉아 쉬며, '와 나 이제 발 큰일 난 것 같은데..'싶어 조금 후회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멀리 보이던 로그로뇨

그렇게 나는 무사히 로그로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다. 무사히는 아닌 것 같다. 이 날, 내 양쪽 발바닥에는 큰 물집들이 생겼고, 이 물집들은 순례길 내내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원인이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아침 일찍 혼자서 출발할 것이고, 중간에 만난 그들을 따라 함께 걸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진 혼자만의 시간이었기에 더 좋았고 더 그리워졌고 더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후의 순례길 동안, 이때 생긴 물집 때문에 고생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다시 무리해서라도 이들을 따라서 걸었을 것 같다.


로그로뇨에 도착한 후에는 송별회가 있었다. 내일 J오빠가 일정상 로그로뇨에서 레온으로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J오빠는 정말 핵인싸여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함께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오빠 덕분에 이 날 저녁 식사는 역대 최다 인원인 12명이ㅋㅋㅋ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맛있는 타파스를 먹겠다며 12명이 발을 끌고 돌아다니다가 겨우 들어간 식당. 정말 다양한 타파스들을 양껏 시켜 먹고, 술을 마시며 신나게 이야기 나누던 그 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마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런 재미는 느끼지 못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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