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예매해 놓았기에 아침 일찍 혼자 출발했다. 그런 바람에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 심한 안개에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노래를 들으며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선곡은 김동률, 아이유의 '동화'! 안개 가득했던 무서운 길을 환상의 나라로 가는 듯한 기분으로 바꾸어준 노래 :) (역시 노래의 힘은 대단하다.)
엘 아쎄보 이후에도 내리막 길은 대단했다.. 특히 눈이 녹고 안개가 껴 바닥이 미끄럽고 위험했다. 조금 천천히 걷고 싶었지만 폰페라다에서 사리아로 가는, 나의 '마지막' 버스를 2시로 예약해 놓은 상황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정말 열심히 걸었다. 앞만 보고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걷는 동안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혼자 걸은 지 두 시간이 지났을까, 앞서 걷고 계시던 한 외국인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올라!" 인사만을 남기며 빠르게 지나친 나. 인사를 한 뒤 조금 더 걸었을까, 신발끈이 풀려 잠시 멈춰 선 나를 할머니는 불러 세운 뒤 물었다.
"무슨 급한 일 있어?"
"아... 제가 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시간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산티아고를 위해 버스를 탈 결정을 한 것은 아주 큰 용기였겠어. 그 결정을 위해 부지런히 걷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유를 갖는 것이 좋아.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거든." 이 말만을 남긴 채 다시 걷기 시작하던 할머니. 조금은 멍해져서 신발끈을 묶다가 말고 멈춰 섰다.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바로 옆에 놔두고 나는 발 밑의 진흙과 돌길만을 보며 걷고 있었구나. 아마도 바닥만을 보고 걷던 나의 모습이 안쓰러워 할머니는 나를 불러 세웠으리라.
2시에 버스 예약이었으니 시간은 충분했었는데. 혹시나 하는 조급한 마음에 나는 앞만, 아니 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엘 아쎄보 - 폰페라다 구간은 나에게 참 힘들었던 내리막길로만 남았을 텐데, 그 구간을 분위기 있던 멋진 안개길로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연금술사 내용 중, '아름다움과 기름 두 방울'이 생각났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네. 그 젊은이는 사십일 동안 사막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지. 그곳 저택에는 젊은이가 찾는 현자가 살고 있었어. 현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마침내 젊은이의 차례가 되었어.
현자는 젊은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지. 그리고 덧붙였어. ‘그런데 그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넸다네. ‘이곳에서 걸어 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두 시간 후에 그는 다시 현자 앞으로 돌아왔지.
‘자, 어디…….’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었다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네. 당연한 일이었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오.’ 이제 젊은이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지.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 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네. 다시 현자를 찾은 젊은이는 자기가 본 것들을 자세히 설명했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네. 그제야 숟가락을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현자 중의 현자는 말했지.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소중한 것을 지키면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 그 두 가지의 조화. 참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참 지키기 어렵지만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 내용이었는데. 오늘로 인해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폰페라다 :) (첫 번째 사진은 내리막길을 무사히 걷게 해 준 나의 사랑스러운 스틱 사진이다!)
그렇게 주위도 둘러보고 조금씩 쉬며 걷다 보니 금세 폰페라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폰페라다에 도착은 했지만, 버스 터미널은 폰페라다 끝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금 더 걷고서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버스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남긴 시간에 도착해 크로와상과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렸다.
나의 마지막 점프....!
드디어 타게 된 나의 마지막 버스, 폰페라다 - 사리아! 이번 버스는 직행이 아니라 루고에서 환승하는 버스였다. 루고부터는 사리아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서 이 버스를 타게 된 것이겠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모두 무사히 산티아고까지 완주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