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웠던 이유 (EU)

190427 Day26. 사리아 - 포르토마린 22.4km

by YEON

마지막으로 향하는 걸음이 시작됐다.

순례자들이 아주 많아졌다. 사리아부터는 줄을 지어서 간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는 약 100km이다. 약 5일 정도의 일정으로 산티아고 순례증을 받을 수 있는 구간이기 때문에 일정이 짧은 사람들이 많이 걷는 구간이다.

수학여행 온 아이들

참 다양한 무리들이 많이 보였다. 가족, 친구들, 연인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무리는 달랑 보조 가방만을 메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크게 틀고 춤추며 신나게 걷는 학생들 무리였다.

'음... 친구들끼리 놀러 온건가? 여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하고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수학여행을 온 것이었다. 학생들 중 한국인 학생이 있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맘때쯤이면 자신의 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변 국가에서 순례길로 수학여행을 온다는 것이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수학여행을 오다니..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니지, 나에게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주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느낌인 걸까? 아마 비슷한 것이겠지. 그렇지만... 정말 부러웠다. 나에게는 정말 큰 도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가슴속의 오랜 버킷리스트인 이 곳을 이렇게 수학여행으로 올 수 있다는 것에.


처음에는 수학여행으로 순례길을 걷는 아이들을 보며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긴 구간을 걷는 것도 아니고, 무거운 배낭도 없었으며, 모든 숙소나 음식이 준비되어있는 상황이니까. 특히 첫날, 함께 길을 걷게 되면서 더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끼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너무나 즐겁게 걷던 아이들을 보며, 이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인 줄 아는 걸까? 그저 소풍을 나온 길이 아니란 말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봐도 한 달째 걷고 있던 사람들의 '올라',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낄낄거리며 웃는 모습들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그 생각은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바뀌어져 갔다. 처음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떠들던 아이들이, 점점 주위의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배려하는 모습들이 보였으니까. 특히 큰 배낭을 걷고 오랜 시간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에게는 더욱더 배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리가 없는 바에서 양보한다거나, 길을 걷다가 만나면 먼저 큰 소리로 인사하고 간식거리를 나눠주고는 했다.) 나와도 마지막에는 세상 친해져서 인사를 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도 함께 얼싸안고 서로를 축하했으니...!

아마 그들도 하루하루 걸으며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었겠지? 아무리 배낭이 없어도, 긴 거리가 아니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아도 말이다.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점점 알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길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생각으로 걷는지.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않았어도 그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면서 누군가의 강요로 오게 된 곳이었지만 이 길에 대해서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경험이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좋은 양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곳에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유럽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양인들은 긴 휴가나 퇴사를 하지 않고는 순례길을 오기 힘들었지만, 유럽인들은 잠깐 휴가를 내고 일주일씩 순례길을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순례길을 걷는 중 부활절을 보냈기에 짧게 걷는 친구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퇴사를 하고 올 수밖에 없었던 나는 너무나 부러웠다.

EU가 부러웠던 이유... 산티아고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울 수 있다는 것. 무조건 한 번에라는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다시'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조금 더 쉽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그 친구들을 보며 나도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다면! 이렇게 무리하다가 아프지 않았을 테고, 버스를 타며 점프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생겼다.

그렇게 사리아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00km 표지석이 나타났다. 점점 거리가 줄어드는 표지석을 유심히 보고 걷고 있었기에 곧 나올 줄 알았지만 너무나 생뚱맞은 곳에(시골 마을 뒷골목 같은 곳에) 100km 표지석이 서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 더 울컥했다. 그동안의 순례길에서의 일들이 모두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걸었던 길들, 즐거웠던 추억들, 속상했던 일들... 그리고 아쉬워졌다. 이제 100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 이후부터의 길은 아주 조용한 시골길 같았다. 날씨도 아주 좋았다. 유채꽃들도 많이 피어 제주도의 한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사리아 이후, 첫 번째로 내가 쉬게 될 마을 포르토마린. 이곳은 내가 다시 산티아고에 간다면 2박은 머물고 싶은 마을이다.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는데, 강이 아니라 호수를 끼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아름답고 편안한 포르토마린 덕분에 노래 들으며 실컷 산책도 하고 편히 쉴 수 있었다.

점점 아쉬워지고 있다. 이 길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끝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던 포르토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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