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남편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수화기 너머로 5.18의 함성 소리 대신 울음소리가 부고를 알렸다 93세. 누구는 호상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돌아가시기에 아깝지 않은 나이는 없다 몇 달 전이었다 긴 시간 요양원에 누워계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남편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내가 캐나다 오기 전 뵈었던 외할머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 속의 외할머니 모습은 몇 년 동안 가뭄이 들어 물기가 바싹 마른 나무를 생각나게 했다 나는 몇 번을 확인했다 사진 속의 외할머니가 진짜 외할머니 맞냐고. 그리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요양원 출입 제한 명령이 떨어졌고 외할머니는 세상과 차단된 병실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5월 19일 오후 5시 외할머니는 저곳의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과 헤어지는 입관식을 했다 외할머니 얼굴의 모든 주름이 펴져 있었다 살아 계실 때 펴지지 않으셨다던 외할머니의 다리도 곧게 펴져 있었다 사람이 숨이 끊어진 후 4시간 안에 휘어진 모든 신체를 펴면, 굽었던 등도 아파서 펴지지 않던 다리도 모두 곧게 펴진다고 한다 팔도 다리도 곧게 편 상태로 누워계신 외할머니는 이제 막 시집와서 누가 뭐라고 말만 걸어도 볼이 붉어지는 새색시 같았다 열일곱에 시집오셔서 다섯 남매를 두고 먼저 가신 남편을 대신해서 살아오신 외할머니의 삶. 그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한 인간의 역사가 꽁꽁 묶여 그곳의 옷으로 갈아 입고 그곳으로 갈 준비를 했다 사라지는 역사를 보고 있는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눈물. 이것뿐이었다 마스크를 쓴 코와 입 속에 슬픔이 담겨 나는 그 슬픔을 고스란히 삼킨다 사람은 죽기 전에 곡기를 끊는다고 하는데 외할머니 역시 며칠 동안 곡기를 끊으셨다고 했다 저승 가는 길이 얼마나 긴 여정이길래 이승의 몸의 무게를 줄여서까지 가야 하는 걸까.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그 긴 여정에 나의 눈물이 무게가 될까 두려워서ᆢ
5월 20일 화장. 시댁 어른들의 결정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외할머니의 관을 모시고 화장터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외할머니의 몸은 가루가 되어 한 줌 재로 변하는 것이다 모니터로 한 인간의 역사가 사라지는 순간이 보였다 그리고는 두 시간 뒤에 다시 이곳으로 오면 된다는 관계자의 멘트가 꿈처럼 들렸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저승길은 고작 두 시간이면 되는 거리였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경험해 보는 기다림. 두 시간. 외할머니의 뼈가 가루가 되는 시간. 두 시간. 이런 준비 없는 기다림에 필요한 것. 기도였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길ᆢ 더 이상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인내하지 않으시길ᆢ 그 넉넉한 웃음이 영원하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외할머니가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시는 3일 동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고 해가 쨍쨍. 더웠다가 추웠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