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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by 우소비

설거지는 밥을 먹고 난 후 우리에게 주어진 일거리이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일종의 책임져야할 의무같은 것이다.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당장은 편하지만 다음에 먹을 그릇이 없어진다.

그릇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 먹기 직전에 그 오래된 음식이 묻은 그릇을 씻어야하는 더욱 더 번거롭고 불편한 일들이 우리를 무겁게 한다.

체험 삶의 현장

설거지...

설거지는 분명히 일거리이다.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해야만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어떻게 대해야할까?


사람마다 설거지를 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설거지를 대하는 태도나 설거지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설거지를 한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우리집만 해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너무 다른 방식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설거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전에 내가 첫째 임신 초기에 엄마가 집에 오셨었다.

엄마는 아주 옛날분이시고 음식이며 삶의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다.

지금 내 첫째 아이가 나와 36살 차이가 나는데, 우리 엄마와 나도 36살 차이가 난다.

그러니 나의 아이에게 나도, 나에게 나의 엄마도, 아주 옛날 사람인거다.


내가 임신 초기여서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엄마가 쌓여있던 설거지를 해주셨다.

설거지는 양도 많지 않았고 그다지 더럽지도 않았다.

엄마는 수세미로 설거지를 쓱쓱 닦으셨다.

세제도 없이, 물로만...

그리고 미지근한 물로 헹궈 차곡차곡 포개놓으셨다.

그게 다였다.


나는 분명 엄마랑 꽤 오랜시간 같이 살았다고 생각했고 엄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설거지 하는 모습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왜 세제를 쓰지 않고 물로만 닦지?

내가 엄마랑 같이 살지 않은지 꽤 오래되긴 했나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를 타박하며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꼭 세제를 써야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찝찝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먹던 그릇인데 뭐가 그리 찝찝했을까?

4남매를 키우시며 지금까지 엄마는 얼마나 많은 설거지를 해오셨을까?

너무 오랜시간 설거지를 하다보니 그릇을 그렇게 꼭 박박 닦아야만 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걸까?

그래서 설거지를 그렇게 대충 하시는건가?

아니면 본인 자식이 먹은 그릇은 더러울게 없다고 생각하시는걸까?


우리 남편은 찬물을 아주 쫄쫄 소리나게 계속 작게 틀어놓고 설거지를 한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기 위한 작업이라 간단하게 닦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깨끗한 물을 담아 마신 컵이든, 기름진 음식이 담겼던 그릇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기름기가 전혀 닦이지 않는것이 아무렇지 않은듯 찬물로 쫄쫄 닦는다.

그렇게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물을 아끼기 위해서, 더운물을 데우는 전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남편은 그렇게 설거지를 한다.

하루는 기름진 음식을 먹고 이렇게 설거지를 해서 수챗구멍이 막힌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막힌구멍을 뚫기 위해 소다와 식초와 뜨거운 물을 부으며,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꼭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부터 나는 그릇을 닦을때는 항상 뜨거운 물을 틀면서 설거지를 해왔다.

남편과 똑같이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기 전에 하는 설거지이다.

기름기가 있는 그릇이든, 깨끗한 컵이든 모두 뜨거운 물로 닦는다.

기름기 있는 그릇을 세척기에 넣는것도 싫고 뜨거운 물이 그릇이 잘 닦이기 때문이다.

밥풀이 묻어있는 그릇이든 기름이 묻어있는 접시이든 뜨거운 물이면 모두 씻겨져나간다.

뽀드득한 접시와 그릇을 세척기에 집어 넣으면 뜨거운 김으로 그릇의 물기가 금방 날아간다.

물과 전력낭비라고 할지라도 뜨거운 물로 닦아야 더 빨리 깨끗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는 몇 십년간 하루 삼시세끼 하는 설거지를 얼른 끝내기 위해 간단하게 물로만 설거지를 끝내고, 누군가는 절약을 위해서 쫄쫄 흐르는 찬물로 설거지를, 누군가는 기름기 제거를 위해서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한다.

아마 우리집 둘째가 설거지를 했다면 신나게 비누거품을 잔뜩 묻혀서 한 시간이 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의 머리속에는 각자 설거지가 어떤 의미인지가 들어있다.

얼른 처리해야하는 일거리, 효율적으로 해야하는 일거리, 깨끗해야하는 일거리, 신나는 비눗물놀이...

누가 어떻게 하든 설거지에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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