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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Oct 08. 2021

저녁 8시 반, 감사함을 깨닫는 시간.

-페데레프스키, 녹턴 op16, no4.

 저녁 8시 반에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MRI를 찍어보자는 담당 의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크게 아픈 데는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병원이랑 친했다. 평생 지켜봐야 할 수치가 왜 그렇게나 많은지. 내 상태는 언제나 “현재 아프지는 않지만 언젠가 아플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임으로 지켜봐야 함.”이다.     



 나의 병원 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혈액검사와 초음파를 정기검진 전에 마친 후 검진 날짜에 담당 선생님을 찾아오면 된다. 보통 1시간 정도 기다리고 상담은 5분 정도 한다. 특별히 문제는 없네요. 다행입니다.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 이 소리를 듣기 위해 6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에 오고 1시간을 기다린다.     


 병원에 정기적으로 오는 만큼 여러 명의 의료진을 만났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병원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나한테 화를 내는 건가 싶을 정도의 불친절한 의료진들의 비율보다 말 한마디라도 살갑게 하려는 의료진의 비중이 확실히 많이 늘었다. 의료서비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혈전이 보이는데 이번 주 안으로 MRI 찍어야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친절한 톤으로 이야기한다고 좋은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닌데. 담당 선생님은 상냥한 어투로 지시하셨고 나는 그렇게 저녁 8시 반에 병원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저녁 8시 반에 병원 출입은 처음이어서인지 자주 보던 풍경인데도 많이 낯설었다. 본관 중앙로비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조명을 꺼서 매우 어두웠고 수납은 기계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 패널과 함께 소수의 보안 요원이 병원 로비를 지키고 있었다. 낮과는 또 다른 모습에 잔뜩 얼어붙은 나는 이어폰을 꺼냈다. 음악만이 숨 막히게 조용하고 차가운 공기에 압도되려는 나를 구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온이 필요할 때.     


 녹턴은 야상곡이라고 하며 밤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악곡이다. 18세기부터 비슷한 형식의 곡이 있었다고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으로 완성된 것은 19세기였다. 아일랜드 작곡가  필드는 녹턴의 틀을 잡은 작곡가인데 그로 인해 A-B-A’ 이르는 형식이 확립됐다.


 그러나 녹턴이 유명해진 것은 쇼팽의 영향이 크다고   있는데 19세기엔 피아노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고 셈세한 표현을 주특기로 하는 쇼팽에게 녹턴은 그의 감성을 표현하기에 좋은 바탕이 었기 때문이다.


 녹턴 특유의 분위기어떤 이는 서정성이라고 표현하고 어떤 이는 어둡고 우울함이라고 표현한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생각하는 녹턴의 감성은 평온함이다. 녹턴을 듣고 있으면  동안의 번잡스러움, 고됨, 부산스러움 등을 내려놓으라는 다독임을 듣는 듯하다. 이는 3~5 정도의 짧은 길이의 곡이라 집중력이 발현되는 이유도 있지만 녹턴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리라.     


 수많은 녹턴 중 내가 즐겨 듣는 녹턴은 파데레프스키의 녹턴으로 쇼팽의 멜로디가 셈 세하면서도 감정이 풍부해 독주자의 연주력을 돋보이게 하는 반면 파데레프스키의 녹턴은 시종일관 조용하고 잔잔하게 물 흐르듯 하여 연주자보다는 멜로디 자체에 푹 빠지게 된다. 때때로 나의 자장가가 되기도 하는 이 곡은 마음의 평온이 필요할 때 자주 듣는다.


https://youtu.be/p9NhwQ4-oHM

         


감사와 반성이 오가는 시간.      


    

 조영제를 투여받기 위해 주사기를 팔에 설치하고 잠시 대기 중이었다. 나는 페데레프스키의 녹턴을 계속 반복해서 재생하며 마음을 달랬다. 병원 의자에는 나와 노년 부인 이렇게 둘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환자보다 의료진이 더 많이 보이는 낯선 풍경의 한가운데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그 순간, 침대 두 개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한 명은 머리가 반쯤 없었다. 머리 반이 움푹 들어가 있는 상태로 촬영실을 들어가는 침대를 보니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피가 철철 흐르는 자극적인 화면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도 실제 온몸이 만신창이인 사람을 보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내 팔에 꽂힌 주사기를 더 꽉 잡으며 파르르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보려고 노력하는 중에 두 번째 사람의 침대가 지나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다. 나이도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말랐고 아주 작았다. 그 사람은 여자도 남자도 노년도 청년도 아닌 그저 ‘아픈 사람’이었다.     


 이 음악이 이렇게 슬픈 음악이었던가. 귀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나에게 안식을 줬던 녹턴의 멜로디가 한없이 서글퍼진다.     


 한차례 침대 무리가 지나가고 나의 순서가 와서 드디어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다 늙어서 무슨 짓인지. 팔이 저려요. 목이 불편해요.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아요. 의료진들에게 할 수 있는 아기 짓이란 아기 짓은 다 한 거 같다. 기계에 몸이 들어가는 순간 어찌나 떨리던지.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조금만 참으면 끝나요.”    

 

“잘하고 계세요.”          



 잔뜩 겁먹은 어른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MRI 기계 안에서 우는 추태를 부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촬영을 힘겹게 마치고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였다. 본관을 빠져나오는 데 응급실 앞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젊은 여자분이 보였다. 그 여자분을 지나치며 종종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오는데 말이나 글로 표현 안 될 만큼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귀에서는 언제나 나를 위해 안식을 주던 녹턴이 계속 흐르고 있는데 오늘은 내가 듣던 그 음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들린다.

     

 그 순간, 의료진이 불친절하면 불친절하다고 투덜거리고 친절하면 또 쓸데없이 친절하다고 투덜거린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큰 병 없이 여태 잘 지낸 것이 이렇게 검사를 꾸준히 받아왔기 때문이었을 텐데. 나는 왜 내가 누리는 것들을 그렇게 자주 잊는 것인가. 작은 일에 감사하자. 내가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반성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병원의 밤공기는 차갑고 슬프고 가련했다. 반성의 시간을 한참 가진 후 나는 병원 문 앞에 우뚝 서서 내가 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나의 평온한 녹턴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된 시간 틈틈이 그들에게도 평온이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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