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과 emergency protocol(2)
그렇게 사건 발생 1시간 뒤, 나는 바이탈과 혈압계를 차고 조용한 응급실 방에 격리되었다.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지만, 지금까지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치고 남겨진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함께 응급실에 남아준 친구와 사건 경위를 돌이켜 보며, 피해가 이 정도에서 끝났음에 감사했다. 내 눈이 정확히 어떤 피해를 입은 것인지 불분명했지만, 어쨌든 나는 앞을 볼 수 있었고, 눈 주변 피부에 얕은 화학적 화상을 입은 것 외엔 피해가 없었다. 눈 아래로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눈에 들어간 화학물도 바로 씻어내서 다행히 기관지로 들어간 화학품은 없었다.
친구를 위해 티브이도 켜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도 충분히 나누고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고 나니,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간단히 상태 체크를 했고 큰 이상은 없을 것이란 얘기를 해주셨다. 혹시 몰라서 파상풍 주사를 맞기로 했고, 나의 추가적인 요청으로 더 집중적인 눈 검사와 눈 세척을 진행하기로 했다.
(응급실에 갔을 때, 꼭 필요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요청해야 한다. 응급실에선 최소한의 조치만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잘 생각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꼭 말해야 한다)
화학적 화상을 '눈'에 입고 오는 환자들이 많이 없었는지, 응급실에 있던 간호사들이 내가 하는 모든 검사과 진행과정들을 흥미로워했다. 눈 검사판을 가져와서 시력검사를 하는 것이라던지, 커다란 식염수 두팩으로 눈 세척을 하는 거라던지. 특히 눈 세척은 근 삼 년간 한 번도 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는 간호사 다섯 명이 와서 같이 구경하고 교육받고 한 마디씩 거들고 갔다. 다들 내가 어떤 느낌인지 듣고 싶어 했는데, 다들 왜인지 내 대답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또 그 기대감에 화답하고 싶어서 끝없이 농담을 해댔는데, 바닷물에 눈을 담그고 있는 거 같다던지 뭐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0.5% 의 NaCl(소금)이 담긴 식염수였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눈을 검사할 땐, 눈에 염색약으로 색을 입혀서 UV로 검사를 했는데, 처음엔 UV 라이트가 안 쓴 지 오래되서인지 안 켜졌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이런 건 다 이모양이라며 툴툴대시더니 때려서(!!) 고치시고 태연히 내 눈을 점검하셨다. 한참 동안 요리조리 보시던 선생님은 well..로 말문을 열며, corena erosion (각막 손상) 이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여서, 화학물을 뒤집어썼으니 당연하지 뭐...라고 하셨다. 이때의 제스처와 어투가 너무 웃겼는데 어떻게 표한할 도리가 없다. 마치 토스트를 너무 구웠더니 타버렸지 뭐야~ 정도의 어투였다. 그런 의사 선생님의 가벼운 말투 덕분에 나도 이 상황을 더 가볍게 볼 수 있었다. 머~ 내 각막에 조금 흠집 났어~ 이런 느낌으로.
전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투와는 다르게, 선생님은 후 처리에 꽤 공을 들여 주셨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연고도 처방해 주시고, 지금 우리 병원은 아이 닥터가 없다면서, 갈 수 있는 병원 추천과 함께 본인이 직접 예약도 잡아주셨다. 그것도 바로 다음날로! 한국에서는 뭐 그게 특별한 일이야? 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당일날 병원 예약을 잡는 것은 아주 기적적인 일이다. 예약을 못잡에서 길거리에서 죽어갈 수도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만큼 발전된 의료 기술에 비해 의료 시스템이 많이 후 달린다.
그렇게 많은 케어와 관심을 받으며 응급실을 나와 24시간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고 학교로 갔다. 짐을 챙길려고도 있었지만, 내가 눈을 소생시키느라 내팽개친 실험 물들을 갈무리 하기 위해서였다. 눈을 이지경으로 조져놓은 장소로 호다닥 돌아와서 실험 물들을 챙기는 나를 보며 친구는 Really?라고 물으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순간적으로 토할 것 같았으나, 어쩌겠는가, 나는 다시 돌아와야 하고, 이 실험도 계속되어야 하는데.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응급실에서 과정과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보겠다
1. 수속- SSN과 insurnace 카드(늘 핸드폰에 가지고 다니거나 실물을 지갑에 가지고 다니자)
2. 혈압/맥박 체크 -간호사분들이 해주심
3. 영겁의 기다림
4. 의사 선생님과 대면. 이때 필요하거나 궁금한 거 다 말하기. 다음 차례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5. 간호사님-의사 선생님-간호사님 무한으로 뵈며 영겁의 시간에 걸쳐 필요한 처치 완료
6. 스태프 분이 들어오셔서 정보 (insurance card, 신분 등에 대한)와 이런저런 서류(patient right, agreement 등)에 사인 요구.
7. 의사 선생님/ 스태프분이 향후 치료 안내: 가야 할 병원 같은 것
8. 거기서 바로 받은 약이 없다면 그냥 나오면 됨. 결제는 보험사에서 날아올 것이다..
병원에서 청구서를 보험사로 보내면 깔 거 까고 환자한테 새로운 청구서가 날아가는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