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반으로, 평안은 두배로
“내가 휴직하는 걸 장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딸 걱정하시는 거 아냐?”
“이모님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우리 부모님께는 얘기하지마”
걱정도 참 많다. 마음이 아파서 몸까지 아픈 지경이 되었건만, 가족이 또는 주변인들이 나를 행여 안쓰럽게 볼까봐 노심초사이다. 이순신 장군도 아니건만, 내가 아픈 걸 주위에 알리지 말라고 얼마나 입조심을 시키는지, 본인이 병원 다니는 것도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대니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여 확성기에 대고 발표라도 하고 싶어진다.
남편이 이렇게 무너지고 힘들어 할 때, 내 마음 속에 떠오른 분들이 있다.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직장의 전 보스이다. 내 직업은 외국계 금융기관의 비서이다. 외국인 전문경영인이 일정 기간의 임기를 받아서 한국에 주재하며 기관의 대표직을 수행한다. 어쩌다보니 왕언니가 되어서, 전문경영자가 5번 바뀌는 동안에도 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얘기로 돌아가자면 수년전 한국에 도착한 지 안된 나의 보스는 여태껏 만났던 그 누구보다 유쾌하시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였다. 한국에 도착한지 2주도 채 안되던 시점부터 그는 고꾸라졌다. 7일 연속 잠을 못자고, 급기야는 응급실에 실려가고 회사에 나오지 못하셨다. 너무나 무서웠다. 혹시라도 모를 언어의 장벽에 힘든 상황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응급실 까지 같이 가는데, 나의 보스와 부인의 두려움은 나까지 압도시켰다. 결국 공황장애와 우울증의 진단을 받고, 쉬시다가 다행히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셨다. 늘 나에게 본인들의 어둠의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한국을 떠나실 때도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현하셨었다.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구만.
사모님께 이메일을 썼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두 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제 남편이 사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두 분은 타국에서 이 힘든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저에게 조언을 주세요. 마치 옆에 있는 듯 순식간에 답장이 오고, 이메일 쓰는 내내 또 답장을 읽는 내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통화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시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엉엉 울 거 같아서 참았다. 그녀의 답장은 참으로 온기가 느껴지면서도 논리적이였다. 이메일을 읽는데 누군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였다.
이 분들 외에도,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는 동네 언니랑도 우리집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언니도 너무나 따뜻하게, “xx 아빠가 마음이 감기가 걸리셨구나” 하며 “결국에 부부밖에 없어” 하시며 많이 대화를 나누고, 산책도 하며, 쉬시면 잘 회복될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하다. 덕분에 나의 두려움은 반으로 평안은 두 배가 되어서, 아픈 남편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다.
남편에게는 비밀. 요즘 많이 회복되어서 평상시 까칠함이 한번씩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