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 Dec 02. 2024

먹으면 행복할 거야 6


사는 일에 대한 처연함이란... 먹고사는 것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언제가부터 마트에서 장 보는 일이 부담이 되어 버리고 하나를 담더라도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들었다 놨다 반복을 한다.


그러다 그래도 먹이자 싶어서 사게 되는 건 대부분 아이들 관련이다. 오늘 그 마음으로 딸기 두팩을 호기롭게 담아본다. 


9살 막내가 다른 과일은 안 먹어도 딸기는 무조건이니 안 살 이유가 없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값에 플러스되는 금액을 보면 괜스레 한숨이 지어지는 어쩔 없는 노릇이다.


아무렇지 않게 별 탈 없는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한 번씩 정신이 이탈할 때 (오늘 같은 경우 8도의 알코올을 한잔 섭취하고 나니) 삶의 지난함이 목구멍을 타고 오른다. 


사는 게 참 뭐 같다 싶으면서 살아가는 일에 세게 현타가 온다. 딸기값에 고민하고 아이들 외투 한벌에 고민하고 옮길 학원비에 한숨지으며 말이다. 아이셋 키우는 상실감을 부쩍 느낀다. 돈의 상실감을 말이다. 


중년을 지나면서 사는 일에 대한 타격감을 가장 크게 느꼈고 부모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무료함도 크게 다가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여전히 자라나는 아이들, 그리고 갈수록 돈이 더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피로함은 단 한시도 엄마로 살아가는 나에게 떨쳐 나가질 않는다. 


되려 내가 자녀로 자랐을 그 시기는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었고 원하는 대로 주어진 기억이 꿈같기만 하다. 원하는 만큼 누리게 해 주기엔 아이가 셋이고 벌이는 딱 정해져 있으니 그저 항상 아쉬우면서도 머릿속에 계산기가 두드려지니 호화롭게 자란듯한 내 시절이 가끔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도 채워짐의 기억때문인지 먹고 싶은 거 먹으면 세상 행복한 걸로 끝나는 나는 바랄 게 없다. 바라는 게 많아지는 우리 아이들과 다르게 말이다. 그만큼 채워짐을 느낀 순간의 합이 더 많아서겠지? 


풍족하게 자란 줄 모르다 큰애가 중학생이 되고 부쩍 내 중학교 시절과 다른 그 아이에 대한 물질적 대접으로 인해 내 학창 시절이 풍성했음을 떠올렸다. 그 시절 훌쩍 지나서야 친정엄마에게 그 시절 풍족하게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를 전했지만 그 시절 채워짐보다 지금 내 자식에게 결핍이 되는 거 같은 현실에 남몰래 눈물짓기도 한다. 


학원 다녀와서 제일 늦은 저녁을 먹는 큰 아이가 고기가 유난히 맛있다는 말에 가슴에 차가운 온기가 스민다. 오늘 막내도 고기가 유독 맛있다 이야기를 했는데 고기가 좋은 거였을까? 오늘따라 정성을 다해 고기를 구운 엄마 마음이 스민 걸까? 시리면서도 따뜻했을 그 마음이 말이다. 


맛있게 먹어주며 맛있다 해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거기에 후식으로 고민하며 산 딸기까지 주니 괜히 뿌듯해지는 부모마음은 무언인가...


원하는 걸 맘껏 사주진 못해도 이렇게 맛있는 저녁과 과일로 배 배부르게 만족할 수 있다니 역시 먹는 것이 행복을 불러오는 건 진리인가 보다. 


딱히 해줄 메뉴가 떠오르지 않아 목살을 사 온 것도, 고민하다 먹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딸기를 산 것도 비록 예상한 금액을 넘어 지출하게 됐지만 엄마로서 충분했던 거 같아 괜스레 뿌듯하다. 


딸기만큼은 기꺼이 아이들에게 양보하며 입에도 안대는 엄마지만 안 먹어도 먹은 양 충분히 행복하니 딸기는 비싸도 충분히 살 이유가 되는 과일이다. 그 언젠가 딸기를 먹어줄 아이들이 없는 그때는 분명 올 테니깐. 그때는 철 되서 갓 나온 딸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