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육아에만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피곤에 찌들고 얼굴은 생기를 잃어간다. 내 자식들을 키우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 건지 가끔은 쓸모없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들일지라도 24시간 내내 해줘야 하는 일, 해달라는 일, 해주고 싶은 일을 해대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육아에는 장사가 없다. 아무리 장사라 할지라도 나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나를 온전히 바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맨땅에 헤딩해도 아프지 않을 단단함이 필요하다. 그 단단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헤딩하며 아프고 아파봐야 어떻게 해야 덜 아픈지 알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장비도 갖춰 상처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
당신의 육아는 멘땅에 헤딩 중인가? 피가 철철 흐르고 상처 투성이인가? 아니면 장비 덕분에 쿵 하고 떨어질 때 일시적인 충격일 뿐인가?
육아는 매일 아침 눈 뜨고 눈 감고 심지어 자는 중에도 멈춤이 없는 24시간 풀타임 죽 노동이다. 그 죽 노동 가운데서도 엄마에게 꽃은 피고 새가 지저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의 찰나를 찾아보자. 그 순간의 기쁨을 누려보자. 당신은 무엇으로 채우고 기뻐하는가?
나의 육아 장전 비법은 보기 좋고 맛있는 것들이다. 고로 내 육아의 한 수는 빵이다. 그 빵만이 나의 육아의 노고를 달래준다. 어느 것도 이만한 위로를 주지 못한다. 정말 신기한 건 내 태생이 절대 빵순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둘째 모유수유를 하며 빵의 신세계를 접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신세계에 허우적거린다.
빵은 힘든 육아 중에 나에게 찾아온 위로였고 기쁨이자 행복이다. 힘든 육아가 끝나면 빵의 신세계와 이별할 수 있을까? 야속하게도 코로나 이후로 나는 빵의 신세계를 매일 영접했고 빵이 없으면 고된 육아를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 덕에 살은 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을 먹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한다. 살찌는 건 싫으니, 사실 더 찌울 살도 없다.
육아가 고되다 싶으면 내 뇌는 자동적으로 빵을 찾는다. 손이 덜덜 떨리며 밀가루만이 극처방 인양 내 손은 배달앱으로 손이 가고 그날그날 육아의 강도에 따라 먹고 싶은 빵종류도 달라진다.
제빵이 취미인 덕분에 가끔 내가 만든 빵을 먹고 싶을 땐 앞치마를 완장인 듯 여미고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간단한 버터밀크 스콘은 육아의 고됨도 잊게 해주는 천상의 맛이다. 갓 나온 스콘을 먹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그 희열!! 생각만 해도 웃음이 지어진다는 건 나의 진짜 행복이라는 증거 아닐까?
얼마 전에도 갑자기 당이 당기며 스콘이 뇌에서 떠나질 않아 뭐에 홀린 듯 스콘을 만들었다. 누구를 위한 스콘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스콘, 스콘 좋아하는 막내들에게 미리 이 스콘은 너희들 것이 아님을 선언하고 보기 좋은 크기로 딱 네 개만 구워낸다.
그 맛과 향 그리고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내 전용 테이블에 세팅을 하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나만의 기쁨을 누린다. 기쁨의 완성을 위해 앉은 자리에서 스콘 4개를 먹어 치운다. 옆에서 막내들이 한입만을 아무리 외쳐대도 엄마의 행복에 선을 그으며 넘지 못하게 한다. 나란 엄마는 먹는 일에 진심이다.
먹는 일에 쏟는 애정만큼 나의 육아 난이도는 상이다. 육아 난이도 상을 하로 내려주는 건 오직 자애로운 빵뿐이다. 내가 빵을 끊는 날은 곧 육아에서 해방되는 그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물론 고된 육아의 훈장인 살은 남아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