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

by 진주


이번 주 수요일 큰아이들 방학 시작이다. 이미 3주 전부터 방학이나 다름없이 집에서 원격 수업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원격 수업에 대한 부담은 덜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여전히 밥에 대한 고민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거기다 막내는 다음 주부터 방학이지만 큰아이들 방학과 동시에 유치원 방학을 자체적으로 당겨 버리니 목요일부터는 세 아이와 방학 전쟁 시작이다.


방학을 맞이하는 엄마의 비장한 자세로 아이들 식단표를 작성해 보았다. 진짜 미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 요즘이다. 매일 해야 하는 밥이지만 그 밥에 대한 자세를 고쳐먹고 밥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요즘 아이들과 하루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찍고 있다. 찍는 이유는 엄마로서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내 눈으로 보며 성취를 느끼기 위함이다.


엄마의 일이라는 건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같다. 엄마만 아는 그 안개를 증거로 남겨 내 노고를 달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 그림책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에 브이로그 찍고 편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직 어딘가에 올리진 않고 영상 완성 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아이들 역시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하루를 영상으로 다시 바라보며 웃음 짓기도 하고 기억의 끈을 잡으며 추억을 되살린다. 하기 잘했군.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1인이라 어떤 식으로든 성취감을 느껴야지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의 성취감은 곧 명분이기도 하다. 명분이 있어야지만 의욕이 샘솟고 용기가 일어난다. 사실 집안일과 육아는 대단한 명분이지만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고 하는 사람 스스로도 행복해서 한다기보다 역할에 따른 의무감으로 실행한다. 그러기에 재미가 없다. 그리고 귀찮기만 하다. 사실 그 귀찮음의 근본은 그 일들을 내 할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일이 아닌 일에 그 어떤 이도 귀찮게 생각하진 않는다. 엄마 스스로 내 일이라 여기기에 육아와 살림이 그토록 지겨운 것이다.


요 근래 살림에 대한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의 전환을 맞는 계기가 됐다. 누군가의 바지런한 살림을 본다는 것이 이상하게 힐링이 되더라. 자연스레 따라 하고픈 욕구마저 생겼다. 그 살림 유튜브를 보며 나처럼 다 같은 생각은 아닐 거다. 그 영상에 대한 댓글만 봐도 그렇다. 보통 살림 유튜브의 집은 모델하우스처럼 정돈되어 있고 영상 속의 그녀들은 다 우아해 보인다. 그러기에 보는 사람은 자연스레 질투의 오만함도 비치게 마련이다.


다행히 나란 사람은 질투보다는 자극제로서 의욕을 품게 한다. 그녀들 뒷면에 보이는 외적인 요소가 아닌 그녀들의 행동과 손끝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며 그 손끝을 흉내 내고 싶어 지고 그 우아한 행동을 따라 하게 만든다. 그 덕에 매일 하는 살림과 요리지만 괜스레 자부심이 생긴다.


엄마들이 매일 하는 일에 대한 의미부여와 자부심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지속할 수 있다. 여자는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자녀들이 장성하여 부모 품을 떠나도 여전히 살림은 남는다. 여자에게 살림은 몸이 아파 눕거나 관 뚜껑 닫기 전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숙명이다. 먹고사는 일이 생의 절반 이상인데 그 일의 주동자격인 엄마들은 그러기에 위대하다. 그 위대한 일을 매일 해내는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에게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로서 나의 일에 대한 명분을 되새기고 조금은 정돈된 형태로 편히 하고자 식단표를 작성해 보았다. 사실 매 끼니 아이들에게 뭐 먹을지 물어보는 것도 스트레스다. 세 아이 다 식성이 제각각이라 '이거 해주세요. 난 싫어. 이거 먹고 싶어요' 하면 요리를 하기도 전에 맥이 빠져 버린다. 그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식재료로 가능한 식단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준 오늘 아침, 아이들이 메뉴를 하나씩 주문하고 나는 그 주문한 메뉴를 만들어서 내어준다. 이런 깔끔함이라니, 첫날부터 매우 만족스럽다.


엄마 닮아 자잘하게 기록하기 좋아하고 명분을 세우고 싶어 하는 딸이 알아서 선택표까지 만들어 붙여놓았다. 괜히 보람되고 뿌듯하기까지 하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따라주니 아이들에게도 고맙다.


엄마에게 밥은 곧 가족사랑이고 애정이다. 사랑과 애정이 없이는 행해질 수 없는 행위다. 의무감 만으로 한다기에는 엄마의 밥을 먹어본 자는 안다. 엄마 밥에 깃든 추억이, 살아가며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지 말이다. 의무감만으로는 마음을 울릴 수 없다. 사랑이 깃들어 있기에 추억까지 먹고 마음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밥은 어떻게 기억될까? 밥하는 일이 지겹다면서도 장을 보고 아이가 잘 먹을 생각을 하며 밥을 짓는 엄마의 마음은 엄마가 아니고서는 결코 알 수 없다. 엄마가 밥을 짓는 건 곧 사랑이고 자식이다. 내가 먹여 키운 자식, 어찌 엄마에게 밥이 하찮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도 엄마는 밥을 짓고 내 아이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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