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무더위 대환장 콜라보

by 진주


방학 하루 지났는데 미치고 팔짝 뛰겠는 나란 엄마, 이상한 걸까? 잘못된 걸까? 하루 종일 머리에 맴도는 '미치지 않고서야' 차라리 머리에 꽃 단 듯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다. 멍이라도 때릴라 치면 사전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막내의 무차별 공격에 마치 '너의 현실은 이거야'라며 찬물 끼얹는 듯, 멍 때리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브런치.jpg 미치지 않으려고 끄적인 글씨 연습

아이들 방학이 두려운 건, 엄마 시간이 엄마 시간이 아니고, 엄마 몸이 엄마 몸이 아닌 듯, 아이들과 물아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도 독립된 인격체로 하나의 몸인데, 내 몸인 듯 들러붙어 버리는 세 영혼 덕에 하루 종일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엄마에게 들러붙은 영혼들은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요구하고 일거리를 쉼 없이 제공하며 심지어 놀아달라고까지 한다. 오늘 초5 아들이 엄마한테 놀아달란다.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다. 삼시세끼 차리고 치우는 거 만으로도 벅찬 엄마에게 놀이까지 요구하는 너희들, 님들아 그건 니들이 하세요!


너무 애쓰지 않는 육아를 하고 싶은데 성격상 쉽지가 않다. 애쓰지 않은 육아방식으로 키워져 왔기에 내 아이만큼은 애쓰면서 아낌없이 주면서 키우고 싶다. 이것 역시 내가 지고 있는 명분에 대한 최선을 행하므로 성취욕을 채우고자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근본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잘 키우지 못한 아쉬움을 갖고 싶지 않다는 거다. 물론 엄마가 애쓰며 키운다 해서 그 애씀에 대한 결과나 보상 내지 대가를 바라는 바는 아니다. 나의 애씀의 가장 근본은 내 자식을 사랑하는 자식애의 충만이고 다른 한편은 나 스스로 내 부모에게 가졌던 아쉬움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인스타에 이런 글을 썼다.


진짜 죽어라 살고 있다
잘 살고 싶어서 죽어라 살고 있다
잘 살고 싶고 잘 키우고 싶고 잘해주고 싶다
딱 이 마음이다


나의 애씀은 곧 내 삶에 대한 애정이고 자세이다.


삶에 대한 타당성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방황하게 된다. 나의 삶의 타당성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기록하고 삶에 대한 타당함을 마주 한 후에야 다시금 살 용기를 낸다. 왜 때문에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 이렇게까지 용을 쓰며 타당성을 찾아야 하나 싶지만 난 그렇게 생겨먹은 엄마고 또 잘하고 싶기에 구태여 타당성 운운하며 나에게 용기를 실어준다.

엄마에게 타당성을 실어주는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

삶은 매 순간 직면하게 되는 모호함에 타당성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다.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인생에 순간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스스로 놓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 싶다. 삶의 방향을 잃고 살 이유를 찾지 못하기에 삶을 유지할 타당성이 없는 거다. 반드시 우리는 살아갈 이유인 타당성을 찾아 매 순간 용기로 무장해야 한다.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타당성을 부여잡아 용기를 내야지만, 이유 없이 헤매며 골로 가는 육아가 되지 않는다. 정말 보물 같은 건 육아의 타당성은 굳이 엄마가 찾으려 하지 않아도 아이들에 의해 자연스레 다가온다. 그 다가온 타당성을 마주하면, 다시금 웃을 수 있게 되고 용기를 내어 육아에 힘을 낼 수 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용기를 얻어내야 하는 게 문제지만 아이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 않는가!


하루 종일 육아에 대한 타당성을 잃을 만 하면, 아이들을 통해 다시금 용기를 내게 되는 하루의 연속이다. 모호한 답답함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 모호함은 해결되고 아이들이 주는 용기에 다시금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벨 없는 에미 같으니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회복탄력성이 빠른 편이다. 벨 없이 바로 배시시 웃을 수 있는 건,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로 인한 감정오류는 깊게 빠질 필요가 없다. 아이가 보내오는 신호에 그저 배시시 웃어주기만 하면 된다.


코로나와 무더위라는 최악의 콜라보가 엄마를 미치고 팔짝 뛰게 할지언정 우리 아이들은 내 곁에 머물고 나에게 웃어준다. 무더위와 코로나를 탓하는 건 어른의 몫이지 아이들의 몫이 아니다. 아이는 그저 아이다움을 유지한 채 어른의 일은 어른에게 떠넘기면 된다. 어른인 우리는 아이가 아이다움을 잃지 않도록 코로나와 무더위 대환장 콜라보 가운데서 온전히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




아이를 이해할수록

아이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

아이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건

곧 아이의 잠재력을 내다볼 수 있다는 증거다

내 아이를 키우는 힘은

곧 아이의 세계로의 입성

우리가 어른이기에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할 수 있는 건

어른이 오랜시절 그 아이의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내 어린시절의 회귀를 꿈꿀 수 있는 도약의 길이다

그 도약을 통해

비로소 어른은 어른이 되어가고

아이는 아이답게 클 수 있다


keyword
이전 04화엄마의 한숨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