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입성하는 세 영혼

by 진주

자아가 자라기 위해서는 자아를 자라게 해줄 촉매제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사람일 경우 가장 혹독하지만 가장 큰 변화의 주역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일은 최고의 촉매제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게 그런 의미에서 세배의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우리 아이셋이다. 하늘에 있는 신께서 나를 여러모로 많이 키우게 하고 싶으셨는지 둘로는 안되니 하늘의 별똥별처럼 셋째를 이 땅에 내려 주셨다.


사실 셋째로 인해 내 인생의 전환을 맞은 건 분명하니 여러모로 신의 뜻이 통하긴 한 셈이다.


분명 자녀를 키우는 일은 부모를 성장하게 하는 게 맞다. 물론 모든 부모가 그런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주는 신호에 응답하는 부모일수록 그 아이로 인한 성장은 보장이 되는 셈이다.


아이들을 통해 부모는 민낯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안에 잠자고 있던 내면아이의 존재도 깨닫게 된다. 그런 신호를 모른체 감정적으로만 처신하게 되면 부모는 결코 성장을 맛보지 못한다. 아이로 인해 불거지는 내면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 신호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부모는 가지고 있던 내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거 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영역에 대한 도전과 그로 인한 능력치까지도 얻게 한다. 물론 이것 역시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하려고만 할때 가능한 것이다.


여름이면 아이들과 매미사냥을 다닌다. 내가 매미를 잡기 시작한건 작년부터이다. 겁이 많은 아이들이 매미는 잡고 싶고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으니 엄마인 나보고 자꾸 매미를 잡아달라고 하는데 난 곤충이 싫다. 집안의 벌레도 극혐이지만 살아야 하니 생존력으로 때려 잡고 있다. 아쉽게도 남편이 있을 땐 벌레가 출몰하지 않으며 설령 출몰하더라고 나보다 겁이 많은 쫄보인지라 도망이나 안가면 다행이다. 그런데 매미는 생존이 달린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구지 내 없는 힘을 발휘해 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애타게 매미를 잡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지나다 눈치 챈 많은 남자어른들이 매미를 일부러 잡아주고 가신다. 아빠도 못잡아 주는 매미를 지나가는 남자어린들이 잡아주다니... 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배려를 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한번 정도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지만 여러명이 그러는 통에 나의 에너지는 이상한 곳에서 새게 된다.


그래서 내가 매미를 잡기 시작했다. 뭐 사실 한번 잡아보니 별거 아니기도 해서 올여름엔 기술까지 더해져 맨손으로 쉽게 매미를 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요구도 추가된다. 작년에 도저히 커서 못잡겠는 말매미를 잡아달라고 요며칠 그렇게 애타게 부탁을 한다.


"엄만 말매미는 너무 커서 못잡아!"


딱 한마디로 나의 일이 아닌양 지나가 버리는데 이제 매미를 잡기 시작한 12살 큰아이가 자기가 잡아 보겠다며 용을 쓴다. 그러나 이제 갓 매미를 잡기 시작한 아이가 참매미보다 큰 말매미를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또 내 일인양 하고자 하는 의욕이 불탄다. 그래 한번 해주고 말자, 큰 마음 먹고 말매미를 사냥하는데 왠걸 그 매미가 얌전했던 건지 참매미보다 오히려 매끄러운 촉감이 잡을 만 했다. 그렇게 나의 참매미 사냥은 또 시작되었다.

첫 말매미 사냥 성공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이들로 인해 내가 업그레이드가 되고 몰랐던 나의 능력치를 깨닫게 되는구나. 매미하나로 별 생각이 다 드는 날이었다. 나라면 할 수 없지만 아이의 엄마로서 엄마인 나는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아이가 주는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에게로 들어오는 영혼이 있어야 한다. 그 영혼을 통해서 나의 영혼은 확장되고 나와 그의 영혼이 융화됨으로 새로운 내가 재탄생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부모에게 귀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를 초대한다기 보다 부모를 위해 아이 스스로 초대되어 우리에게 입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 시대이다. 과연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 라고 하기엔 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지극히 부모 입장의 주관적 해석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드니 물질에 대한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꼭 돈으로만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돈은 행복의 조건보다는 경험치 차이 정도일 듯 하다. 물질적 여유가 있는 부모의 아이들은 경험하는 사교육도 많을 것이고 여행을 가더라도 없는 부모보다는 횟수적으로 많을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 경험치라는 것도 주관적일 수 있다. 없는 부모에 속하는 나로서는 여행을 자주 가지는 못할지라도 아이들과 매일 산책을 하면서 매일 달라지는 구름 모양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매미사냥도 하면서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 스스로 위안 내지 만족도는 달라질 듯 하다. 사실 코로나 시국에 여행 다니는 부모가 되어 주지 못해서 엄마 스스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긴 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결코 이런 부분을 확대해석하면 자꾸 부족하고 못해주는 거만 생각이 나서 부모 스스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표면적인 채움보다는 아이들이 주는 내실적인 것에 집중을 하게 되면 아이 키우는 일이 어렵거나 힘들다고만 생각 되어지진 않을 듯 하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통해서 부모가 키워지는 부분에 조금 더 집중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가 채움으로 키워지는 아이의 자존감과 아이 스스로 부모에게 주는 자양분으로 인해 키워지는 아이의 자존감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분명 부모로서 느끼는 자긍심도 다를 것이라 여긴다.


엄마인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해주기 위해 엄마에게로 와준 삼남매에게 꼭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거 같다.


사랑한다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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