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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Sep 28. 2021

내성적인 아이를 키웁니다

아이 

세 아이 중 둘째는 전형적인 내향형의 아이다. 내향 성향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유치원에 들어간 6살부터다. 5살까지는 어린이집에서 소수 인원이었고 비교적 안정된 환경이었기에 내향성이 크게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다 6살 때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한 반에 인원이 20명 이상 되는 한 교실에 있다 보니 아이에게는 그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많아야 7명이던 무리에서 25명 가까이 생활하는 교실이라는 공간은 내향적인 아이에게 결코 안전할 수 없었던 거다. 동떨어지기 시작했고 친구와의 사귐이 어려워지고 낯선 만큼 말수는 적어지고 행동반경도 좁아지게 된다. 6살 때 담당 선생님은 아이들 기질을 파악하는 정도의 세심함은 없었기에 단순히 친구 문제에 대해서만 여러 번 상담을 했을 뿐이었다. 6살 때 한 친구와의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지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아이의 사회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아이를 맡은 선생님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 아이가 내향적인 아이라 이런 일이 생기는 구나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단지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어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는 아이정 도로만 인식했던 거다. 


6살 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엄마로서 내가 알아낸 사실은 엄마가 온전히 아이 편에 서줘야 하고 아이의 변호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6살 때 친구와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말을 하지 않음으로 아이는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문제아로까지 찍히게 되는 상황에서 나는 전적으로 아이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저 아이 행동에 대한 개선과 대처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그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로 인해 불거지는 일에 대한 그저 엄마의 해결 방책일 뿐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정작 가장 중요한 건 놓치고 말이다. 아이가 그 순간 기분이 어땠을지,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순탄치 못한 6살 유치원 생활을 보내고 7세가 되어 새로운 반으로 가게 된 아이 담임선생님과 신학기부터 상담을 요청했고 아이에 대한 부분을 전달하고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7세 반 선생님은 아이의 기질에 대한 부분에 배려가 가능하고 그에 맞춰 아이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분이어서 7살 내내 선생님의 세심한 케어 아래 아이는 7세를 무사히 잘 지나게 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는 큰 문제없이 학교를 가게 되었고 3월에 첫 담임선생님과 상담 시에도 난 역시나 아이에 대한 부분을 상세히 말씀드리고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도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 의아함을 가지고 계셨었는데 상담을 통해서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됐다. 더불어 우리 아이가 굉장히 창의적인 아이인가 보다며 긍정적으로 수용해 주시기까지 했다. 


비록 1학년 내내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했고 학교 가기 싫어 죽고 싶다는 말도 했던 아이지만 역시나 선생님의 배려로 아이는 1학년을 무사히 잘 마쳤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2~3학년은 학교를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았기에 아이는 자연스레 학교에 대한 긴장도는 많이 떨어졌고 집안에서의 세심한 케어로 인해 아이는 여러모로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닌 시간을 통해 마음도 꽤 성장하게 되었는지 1학년 때만큼 학교를 거부하거나 학교에 있는 시간을 그렇게 괴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아이는 교실에서 자기 책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자기만의 안정적 공간을 확보하고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서도 자신만의 회복공간 삼아 학교에 대한 두려움을 거둬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향에 대해 좀 더 일찍 파악했더라면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되는 두려움을 피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지나고 보니 많이 아쉽고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내향적인지만 마음에 단단함이 있는 아이라 스스로 견뎌내고 필요한 에너지를 채울 줄 아는 아이 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난 아이 성향으로 인해 큰 걱정은 덜게 된 셈이다. 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내적인 힘은 아이를 지키는 힘이자 아이가 버티는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딸은 본격적인 자아가 드러나는 18개월부터 육아가 참 힘들었다. 단순히 아이가 고집이 세다고만 생각했기에 난 아이의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아이에게 매를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매가 통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를 들지 않았고 아이 양육법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도 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둘째 양육법에 대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와 씨름한 시간이 서로에게 많은 힘을 얻게 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 역시 엄마와 겨루며 엄마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비치므로 엄마에게 알려주었다. 나 역시 아이와 씨름하며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떤 마음과 태도로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아이와 부딪히면서 많이 터득한 셈이다. 


서로에게 아픈 시간이 있었던 만큼 지금은 서로에게 단단한 지지대가 된 것이다. 아이에게만이 아닌 엄마인 나에게도 아이는 참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셈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시간이 버거웠다 싶으면 집에 돌아와 조용히 엄마에게 안아줘라며 다가온다. 스스로 이겨내고 견딘 아이를 위해 팔 벌려 가득 아이를 안아준다. 그럼 아이는 '이제 괜찮아' 라며 안정을 찾는다. 


1학년 내내 하교하는 아이에게 기특하다는 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학교 등하교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러운 아이가 있는 반면 우리 아이처럼 안식처인 집을 벗어나 두려움의 대상들이 가득한 학교라는 공간이 열리기 시작하는 교문을 통과하면서부터는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 긴장의 끈을 풀어내는 하교시간의 교문을 통과하는 것은 아이에게 어쩌면 아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는 마법의 문이 되기도 한다. 


아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순 없지만 아이는 말과 행동, 눈빛을 통해서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에 응답하고 알려줘야 하는 건 부모 몫이다. 아이를 아는 만큼 아이를 도와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다. 아이는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없다. 다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서 알게 해 줄 부모만 의지할 뿐이다. 그렇게 아이는 부모로 인해서 자라고 그 자람 속에서 자신을 지켜낼 힘을 얻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성인으로 자라게 된다. 


아이의 성향에 대해 고민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알아간 답들은 먼 훗날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겪을 시행착오에 대한 지름길이 되어준다. 그 지름길을 가지고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거다. 아이를 먹고 재우고 공부시키는 거 만이 아닌 아이를 알아야 한다. 내 아이를 앎이 곧 내 아이의 자양분이 된다. 


엄마로서 오늘도 아이에게 귀 기울이고 내 아이가 걷고 있는 10살을 지켜보며 이해하고 도와주려 애쓴다. 그렇게 엄마도 10살을 배우며 아이와 함께 11살을 준비한다. 



*내향적인 아이 관련 도서 서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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