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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부 Nov 03. 2022

영혼을 고치는 직업

최근에 나의 직업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을 고치는 사람". 이 오글거리는 직업명은 내가 말한 것이 아니고 처음보는 누군가 내게 말해준 것이다. 그분은 나의 방학에 관해 시기 어린 질투를 하는 누군가에게 선생님들의 방학은 건드리며 안된다며, 영혼을 고치는 직업이기에 성스럽고 고상한 직업이라 말해주었다. 들을 때는 사실 고맙기도 하면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이 한마디 말이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계속 생각이 나더라. 


나는 갓 임용이 되었을 때도, 지금도, 목표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이다. 영어를 재미있고 쉽게 가르치는 사람. 이 변치 않는 목표로 매년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열심히 준비하고, 매 수업에 열정을 바치지만 사실 학년 말이 되면 나태함과 권태의 홍수에 빠지곤 한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애들이 뭘 배워가긴 하는걸까? 사실 잘하는 애들은 여기에서 안배워도 어차피 학원 가서 다해오는데 못하는 애들은 지금 이런 활동을 할 게 아니라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게 유리할텐데, 생각하면서. 


어제 수업시간, 영어 문장을 말하는 보드게임이 본인한테는 너무 어려워 주사위만 열심히 굴리는 한 아이를 보며, 저 아이는 이 시간의 효율이 높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좋아졌다. 내가 다가가 도와주자 다른 조원들이 쌤이 도와주면 반칙이라며 아우성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답지를 들고 있는 조장이 이 아이에게 제대로 규칙을 설명하지 못하고 답만 체크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마 원래의 나라면 내가 끝까지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그 아이가 정확한 문장을 발화하고 규칙을 이해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혼을 고치는 사람'이란 말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여기에서 문법 을 하나 더 가르치는 것이 이 아이의 영혼과 하등 관계가 없다.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조장이 결국 정답을 그대로 알려준다고 해도, 주사위를 던져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경험이 아닌가? 주사위를 살짝 건드렸네, 마네, 하며 싸우고 있는 조에 다가가 무작정 빨리 진행하라고 말하기보다, 각자의 입장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가벼운 농담으로 애들을 웃겨주고 마는 것이 이 아이들의 영혼이 성장하는 것에 더 큰 밑거름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수업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달라졌다. 목표가 달라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다 큰 성인인 나조차 말 한마디에 이렇게 영향을 받는데, 하물며 아직 어리고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하며 부드러운 이 아이들의 영혼에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할까. 


나는 영혼을 고치는 사람이다. 권태로움에 갇혀 따분해질 때면 이 조금은 부끄러운 수식어를 기억하며 수업에 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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