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요리를 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글을 쓴다는 것>

by 겨자풀 식탁


1화 초고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즈음, 최강록 요리사의 우승 소식을 접했다. <흑백요리사 1> 시절부터 이미 오랜 팬이었던지라 가슴 벅차게 반갑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에 썼던 책들 말고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요리를 한다는 것>,


리뷰도 찾아보지 않고 바로 전자책을 구매했다. 시즌 1 때부터 이미 흑백요리사 촬영 세팅장을 '허구의 공간'이요 '허물어질 허상'이라고 정의한 그의 태도를 좋아했다. <주관식당>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맞춤형 주문을 받아 고민하며 요리를 하던 그의 모습도 심히 애정해 마지않았다. 식재료를 인격체 대하듯 하고, 메뉴를 정하는 과정마저 그림으로 꼼꼼하게 디자인해 오는 그의 모습에서 삶을 배웠다.


그런 그가 쓴 책이라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루 종일 파도와 폭풍우를 몰고 다니는 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책을 열었다. TTS 기능을 켜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옆에 앉아 머쓱하고 어색하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중간중간 문장을 멈췄다 끊어가며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AI성우가 읽어주는 목소리마저 최강록의 목소리와 톤, 속도로 들리게 하는 마법이란.


단순히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 '삶'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내 기대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정갈하게 차려낸 코스요리처럼 챕터마다 맛이 다른 별미를 내놓았다. 그중에서 특히 와닿았던 부분은 '밑손질'과 '위생' 그리고 '요리사 최강록'에 관한 이야기였다.


밑손질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이 책에 다 쓰기엔 너무 세세하고 길고 지루한 과정이다. 주방의 일과는 밑손질처럼 고되고 반복적인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요리를 예쁜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올리는 직업으로만 상상하고 요리사가 되려는 학생들이 주방에 들어오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하다 보면 결국엔 밑손질이구나, 깨닫게 된다. 밑손질은 요리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식당 전체의 컨디션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게 착착 준비되어 있어야 주방의 흐름도 원활해지고, 식당의 전반적인 위생도 좋아지고, 직원들도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밑손질이 식당 운영의 60퍼센트라고 나는 누누이 강조한다.
이건 다른 직업, 다른 업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업계 사람들, 전문가들에겐 아주 잘 보이는 작업이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연재를 위한 글쓰기를 앞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이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주방에서 한가득 쌓여있는 재료들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요리사 같구나 했다. 밑손질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 거구나, 너무 세세하고 지루하고 고되고 반복적인 그 일 앞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거구나, 싶었다.


어쩌면, 연재를 시작하기 전, 밑손질이 가장 절실한 재료는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팔딱팔딱 살아 날뛰는 곳을 소금에 절여 잠재우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서 버리고, 그 모든 지난한 과정을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 홀로 감내한 후 주방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야 본요리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


ㅡ 음식을 잘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위생이라고 답하겠다. 맛과 모양, 창의성, 전통 등 음식의 모든 요소를 초월하는 게 안전이다. 안전한 음식은 곧 위생적인 조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위생 관념이 없으면 요리사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위생 관념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은 교육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상식적인 '불조심' 같은 것이니 굳이 안전사고를 겪어보지 않아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가르쳐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게 "안 죽어!"라는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도, 그렇게 먹어도 "안 죽어!" 하고 마는 사람들. 그러고 보면 이 위생 관념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조심성처럼 타고난 심성일지로 모르겠다.


그는 요리사를 꿈꾸는 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 요리사가 갖춰야 할 재능이 무엇이냐는 주제를 놓고 '위생'을 기본으로 꼽는다. 창의성도 중요하고, 민첩성, 순발력 모두 다 중요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본인은 창의적이지도 민첩하지도 않다고. 부족한 창의성은 실천으로 채우고, 느림핑에 준하는 굼뜬 속도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한 가지. '위생'은 이 모든 요소들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도 안 죽어, 그렇게 먹어도 안 죽어,라는 말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글을 쓰는 나의 마음에 적용해 보았다. 창의적이고 싶어서 "이렇게 써도 안 죽어!"라고 하고 싶은 순간은 없는지. 보기도 좋고 맛도 시원한 글을 짠 차려내고 싶어서 "이런 거 읽어도 안 죽어!"라고 고집부리고 싶은 순간은 없는지. 알고 보니 나의 글 위생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건 나의 두려움이었지만. 이 모든 욕심 앞에서 '위생'을 뒷전으로 미루지 않을 '기본 관념'을, 나는 갖추고 있는지.




그는 <흑백요리사> 시즌 1에 출연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때 나는 장어가 돼야지.
그래서 모든 난관을 빠져나가야지.

이 부분을 읽으며 혼자 '풉'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쩜 농담도 이렇게 최강록스럽게 할까 하고. 그리고 잠시 후 농담 한 마디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매우 진한 삶의 철학이 끝맛으로 치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래, 고래들이 싸운다고 고래가 될 필요 없지. 그 사이에서 터지는 새우가 될 필요도 없지. 나는 나에게 맞는 존재가 되면 되지. 고래도 새우도 아닌 장어로 머물면 되지. 그러면 어느 틈엔가 난관을 빠져나와 있겠지. 고래처럼 글을 쓰는 이들을 흉내 내려 애쓸 필요도 없고, 남들과 비교하며 새우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저, 겨자풀다움으로 머물며 나에게 주어진 길을 헤엄쳐 가면 될 뿐이다.


'나는 요리사다'라는 마지막 챕터에서 그는 말한다.


돌이켜봐도, 요리사로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동안 했던 선택들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요리사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손을 잘 씻자는 원칙만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최고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하니까.
.
.
먼 훗날에 내가 굳이 기억될 일도 없겠고, 기억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 어떤 계기로 문득 나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 요리하는 사람이었지. 최강록은 요리사였어. 정도가 좋겠다.
요리사 최강록.


엄청난 업적을 이룬 존재로, 세기의 셰프로 기억되는 꿈은 최강록이라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 요리하는 사람이었지' 정도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마저 식후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처럼 깔끔하고 단아하다. 입 안에 남아 있는 모든 맛의 흔적은 씻어 주면서도, 한 입 먹을 때마다 느꼈던 감동은 더 깊고 진하게 간직하게 해 주는 그런 차 한 잔.


나도, 그저 "그 사람, 글 쓰는 사람이었지" 그 한 마디면 좋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에 늘 마음을 잘 씻자는 원칙을 지키던 사람이었다는 정도면 좋겠다.



IMG_8667.jpg 마음 씻는 겨자풀


이전 07화비장한 마음의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