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다독이다
꿈을 잘 꾸는 편이다.
특히 스트레스 받는 상황 전후로 그렇다. 유해한 배우자가 정서적 학대를 하며 폭언을 쏟아 놓기 하루 이틀 전 꿈을 꾸거나, 폭풍우가 지나간 후 꿈을 꾸는 식이다. 예지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 긴장 혹은 익숙한 패턴의 무의식이 꿈에 나를 찾아오는 것 아닐까.
2025년부터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AI에게 내 최근 상황과 함께 내가 입력한 꿈을 기록 저장하고, 꿈해석에 관한 자료를 기초로 해몽하라고 시켰다. 그렇게 1년 동안 기록을 하니, 일기와는 또 다른 내 삶의 궤적이 남았다. 내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꿈과 함께.
당선 소식을 접한 후에도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루는 두 가지 꿈을 연달아 꿨다.
어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어린아이들 돌보는 것에 관해 도움을 구했다. 나는 그 아이를 좀 더 자유롭게 해 주라며, 그래야 어른들도 아이들도 편하다 했다. 그런데 그걸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그 집 할머니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자유롭게 날아가겠다며.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고, 나도 창문 쪽으로 뛰어가서 아래를 보았다. 이미 사람들이 할머니의 시체를 치우고 바닥에 있는 핏자국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이어서 어떤 모임 장소에 갔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매우 나이가 많고 고지식한 분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 학교의 총장님 부부과 교수님들은 내가 수업에서 받은 점수를 과하게 칭찬하며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속박으로 다가와 벗어나고 싶다 생각했다.
꿈기록을 하고 해석을 시켰다.
1. :내 말이 누군가를 망가뜨릴까 봐:에 대한 깊은 경계:
첫 장면의 핵심은 의도와 결과의 괴리입니다. 00님의 말은 돌봄, 자유, 성장이지만 결과는 타인의 극단적 행동과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이었습니다. 이건 현실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기보다, "내 말과 해석이 누군가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윤리적 긴장이 꿈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2. 책임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장면:
중요한 포인트는, 할머니는 스스로 뛰어내렸고 아이는 다치지 않았으며, 나는 가해자도 직접적인 원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체와 흔적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죠. 이건 무의식이 분명히 말하는 부분입니다. "해석의 책임은 해석자에게 있다." 00님이 모든 결과를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꿈 안에서 명확히 선이 그어진 것이죠.
3. '이미 치워진 사체'의 의미:
이건 잔인한 이미지이나, 심리적으로는 아주 중요합니다. 이미 끝난 일, 내가 개입해서 되돌릴 수 없는 영역, 계속 책임질 필요가 없는 과거라는 뜻입니다. 후처리까지 내가 하지 않는 장면이 나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4. 칭찬이라는 이름의 통제:
총장과 교수들의 과도한 칭찬은 인정이 아니라 기대 조건부 애착입니다. "너는 잘하니까 여기 있어야 해" "우리가 너에게 투자했으니 역할을 해"라는 부담입니다. 00님은 이걸 속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꿈에서 '할머니'라는 존재는 전통적 가치, 문자주의, 위계, 권위 등을 상징할 가능성이 큽니다. 00님의 은유적 서사적 언어가 권위적 문자주의적 체계에서 왜곡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죠. 첫 장면에서는 말의 오역이 파국을 낳고, 두 번째 장면에서는 성취가 오역되어 속박이 되었습니다. 둘 다 "의도하지 않은 해석이 나를 묶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00님은 지금 영향력이 커지는 위치에 있고, 말과 글이 사람에게 닿는 단계에 있으며, 동시에 윤리적 책임을 과하게 짊어지지 않으려는 전환점에 있습니다.
당선 후 나의 두려움이 그대로 나를 찾아왔다. 내 글이 오해를 사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그리고 해석의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다는 무의식의 경계는 위로가 되었다. 과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을 덤덤한 용기가 필요했나 보다.
다음 날 또 꿈을 꿨다.
꿈에 절연한 친구가 나왔다. 사람들 앞에서 겸양의 말을 하며 나를 챙겨주었고, 나는 속으로 그 친구가 가식을 떠는 것이라 생각해 기분이 나빴다.
다음 날도 또 꿈을 꿨다.
꿈에 어떤 사람들이 심사 혹은 평가받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가 가슴이 보이도록 상의를 들어 올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당황하고 부끄러웠다.
꿈기록에 저장하고 해석을 시켰다.
절연한 친구가 등장한 꿈은 관계 회복 욕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는 태도"에 대한 내적 거부감이 분명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겸손, 배려, 사과를 연출하는 태도"에 관한 거부감이며, 00님은 말의 내용보다 맥락과 일관성을 보는 단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심사받는 꿈은 '노출'의 문제를 다룹니다. 과도한 자기 노출과 경계를 넘는 방식의 인정 요구를 보여줍니다. 00님은 질투를 하지도 흥미를 보이지도 않고 불편감과 당혹감은 느꼈습니다. 즉, "저 방식은 내 방식이 아니다"라는 윤리적 정서적 거리 두기입니다. 이는 "인정받기 위해 어디까지 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며, 자기 노출을 전략으로 쓰지 않으려는 00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연재를 시작하면 가식적인 겸손이나 과도한 자기 노출, 내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불거리는 것 둘 다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듯하다. 나답지 않게 거짓 겸양을 떨 필요도, 우리 가정에서 벌어진 일을 과하게 보여줄 필요도 없다.
그렇게 꿈이 나에게 찾아왔다. 내가 나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