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의 발견
휘몰아치듯 제출한 공모전 응모 후 맞이한 가을.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으니, 응모한 사실을 잊고 살겠다는 거였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원고다. 심사하는 분들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내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응모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리해 본 걸로 족하다. 그 이유와 내 삶의 목적을 다시금 그려본 것으로 이미 만족한다.
그렇게 스스로 되뇌며 글 쓰는 모임에 들어가 늦가을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나를 만나야 했다. 그게 내 안에 감춰져 있던 내 모습인지 아니면 타인이라는 굴곡을 거친 내 모습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면, 특히 소외 계층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면, 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 울컥하거나 분노할 때가 있다.
나에게 그 울화는 일종의 원동력이었다. 모든 분노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위험에 처한 새끼곰을 지키기 위한 엄마곰의 분노처럼,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울분이라는 연료가 필요할 때가 있다 믿는다, 지금도.
그런데, 내가 신뢰하는, 그리고 나와 내 글을 잘 아는 분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선명하고 분명한 가치관을 담아낸 글은 좋지만,
격한 마음으로 뾰족하게 쓴 글은 때로 의도치 않게 읽는 사람을 찌르기도 한다고.
사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울분을 터뜨리는 이야기를 하면서까지 그 글을 읽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내 언어를 걸러야 한다는 말 같아서. 애초에 그들을 향한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 달라 호소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 소리마저 나긋나긋하게 예의 바르게 듣는 사람 기분 맞춰 해야 한다는 말 같아서.
얼마나 곱게 다듬어서 이야기를 하면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삶의 환경이 그저 곱디고와서, 거친 환경이나 거친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까지 내 책임인가?
거친 글 하나 소화 못하는 이들로 인해 거친 삶을 사는 이들의 자리가 더 사라지는 건 아닌가?
사실 지금도 그 의문을 품고 산다. 그럼에도 그분이 해 준 한 마디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불특정 다수라 하더라도 누군가를 향해 칼을 뽑는 마음으로 글을 쓰지는 말자.'
유해한 배우자의 학대 못지않게 힘들었던 것은, 그 학대를 더 북돋는 양분이 되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굳게 쌓아 올린 가치관이라는 성이었다. 그 안에 갇혀서 그들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지낸 날들은, 내 안에 작지만 사나운 전사를 탄생시켰다.
나를 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 다루는 이들에게 맞서야 했다. 그들이 나를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해 던지는 말의 그물을 끊어내야 했다. 그러다가 무릎이 까지고 팔이 부러져도, 또다시 일어나 나를 지키고 아이들을 지켜야 했다. 그렇게 지켜낸 목숨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글을 쓸 때도 나는 온갖 도구를 챙겨 들고 자판 앞에 앉는다. 때로는 요리도구를 꺼내 밥을 짓는 마음으로 쓴다. 때로는 커다란 방패를 꺼내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심정으로 쓴다. 때로는 칼집에 넣어둔 칼을 꺼내 얽히고설킨 엉겅퀴 같은 현실을 쳐내고 뚫고 나아가기 위해 쓴다.
내가 지은 밥이 입맛에 맞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 내가 꺼내든 방패가 너무 크다며 과하다 하는 이들도 있겠지. 엉겅퀴를 자르는 내 모습에 겁을 먹는 사람도 있겠지. 그 모든 불편감을 내가 다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있다.
내가 지은 음식에 일부러 독을 타지 않는 것.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를 상대방을 후려치는 데 사용하지 않는 것.
엉겅퀴와 하나로 얽힌 사람이 있다면, 엉겅퀴를 잠시 포기하고 사람을 먼저 살리는 것.
응모하지 않은 것처럼 잊겠다 다짐해 놓고 공모전을 다시금 떠올렸다.
'만약에라도 당선이 된다면, 그때 글을 쓰면서는 꼭 이 다짐을 지킬 거야.'
나의 가시나무 손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도구와 무기로 사람을 지킬 것.
지키기 위한 글만 쓸 것.
나를 해하려 다가오는 이들을 만난다 해도,
똑같이 해하는 마음으로 쓰지 말 것.
반드시 필요한 다짐이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짐이 이후에 얼마나 큰 족쇄가 될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