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뭐 이리 많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

by 겨자풀 식탁




살면서 '내 편'을 가져본 적이 많지 않다 생각했다.


부모님은 매우 엄하셨고, 어린 마음으로는 그 엄한 그릇 안에 담긴 사랑을 읽어낼 눈이 없었다. '내' 부모님인 건 알지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온전한 내 편이 되어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고 계시다).


유해한 배우자의 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공유하기 시작한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았다.


어디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 믿을만한 지인들에게 제한 공개로 글을 썼다. 이런 일을 겪고 있노라고. 사실 우리 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노라고. 나를 아는 지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가슴 아파하며 같이 분노하고 슬퍼해주었다. 그 힘으로 죽지 않고 버텼던 것 같다.


하지만 소수의 친구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내 사정을 알리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그저 누구나 겪는 부부갈등인데 예민하게 군다며 오해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배우자가 그렇게 막 나올 정도면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거 아니냐 추궁할까 무서웠다. 오해하거나 추궁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믿는 가정이면 그 정도 고난은 기도하며 이겨내야지 어디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냐고 정죄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런 나의 우려가 백 프로 기우는 아니었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온갖 성경구절을 갖다 붙이며 '인내'만이 답이라 말하는 이들. 옛날 옛적 아버지들의 예를 들며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늙으면 달라져.'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이들. 신앙이 있건 없건 별 차이는 없었다. 그들이 선택하는 '용어'만 다를 뿐, '그냥 네가 참아. 다들 그러고 살아'라는 핵심 논리는 같았다.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들어간 글쓰기 모임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한 공동체 글쓰기에서 나는 내 아픔을 비유라는 그릇에 담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시콜콜 사건들을 공유하지 않아도 내 고통을 함께 느껴주는 이들을 만났다. 어떠한 판단도, 정죄도, 시답지 않은 조언이나 충고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안전한 공간 하나를 더 만났다.




공모전 응모 소식을 알렸을 때 소수의 친한 친구들 못지 않게 가장 기뻐하며 한껏 응원해 준 이들도 그때 만난 글동무들이다.


잘 해낼 거라고, 분명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공모전에 당선되어 연재글을 직접 읽게 될 날을 기대하며 기다린다고. 겨자씨 한 알 보다도 작은 나의 도전을 제대로 심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푸르른 풀숲이 되어 나를 에워싸주었다. 그 안에 깃든 새가 되어 저마다 노래로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신기한 건, 내가 그들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글을 통해 만났고, 글을 쓰다가 만났고, 함께 글을 쓴 후에도 마음의 끈이 이어져있을 뿐이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들에게만 공유했던 이야기를 이제 일면식도 없는 타인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타인이 아닌 귀인이 되어 내가 건넨 이야기를 두 손으로 고이 받아 보물처럼 소중히 여겨주고 있었다.


내 편이 이렇게나 많다니.


공모전 응모에 당선된 것도 아닌데 이미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당선되지 않더라도 지금 받는 이 마음들이 오로라처럼 아름다운 빛깔로 내 어두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나의 별들, 나의 빛들, 나의 우주들.



3화.jpg 나에게 불이요 물이요 꽃이요 노래요 향기요 눈물이요 책이요 밥이요 포도송이가 되어준 고마운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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