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라고

언니 잘 지내요?

by 겨자풀 식탁

배우자의 학대 문제로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결심했던 게 있다.


'나는 절대 정서적 학대와 관련된 영역에서는 어떤 일도, 봉사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진절머리 나는 괴물 같은 존재와 싸우며 똑같은 괴물이 되지 않고 나를 지키는 일은 무척 버거웠다. 아이들까지 보호하고 지켜내는 건 열 배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이 상황만 해결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서적 학대와 관련된 모든 다리를 끊어버리리라 다짐했다.


열심히 읽은 책도 다 버리고, 듣고 또 들어서 외울 지경이던 전문가들의 유튜브 강의도 구독 취소하고, 학대 경험자 혹은 생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돕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옆사람을 살릴 수 없듯, 나 또한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건 생존을 거스르는 사치였다.


제법 오랜 시간 상담을 받으며 기대보다 더 큰 치유를 경험했다.


나를 알게 되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솥뚜껑만 봐도 놀란 가슴을 부여잡는 과한 두려움도. 천방지축 꽃길을 꿈꾸는 설렘도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로 치자면 한쪽 다리에는 붕대를 감고, 한쪽 팔에는 깁스를 한 채 재활 치료를 하던 시기 즈음이었다. 정서적 학대 속에서 앞뒤 없이 위아래 가리지 않고 온 존재에 멍이 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하고 글과 댓글로 교류를 시도했다. 댓글에서 2차 가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룹 관리자에게 신고를 했다. 그 사람이 쓴 2차 3차 심리조종 충만한 댓글을 반박하는 몸글을 올렸다. "여러분 이런 말 들으면 안 돼요.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정서적 학대자가 바로 이 사람 같은 전략을 쓰면서 우리를 계속 혼란에 빠뜨리는 거라는 걸 기억하세요. 당신은 소중합니다."


아직 다 낫지 않았음에도 붕대를 풀고 깁스를 벗었다. 온 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두르며 기운을 쏟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회의가 들었다. '이거 해서 뭐 해. 내가 이런다고 달라져? 어제도 유해한 배우자는 아이들과 나에게 폭언을 한 바가지 퍼붓고 세 시간 동안 잠도 못 자게 괴롭혔는데?' 소위 말하는 '현타'가 매우 세게 왔다.


'그럼 그렇지 싶었다. 돕긴 뭘 도와. 각자도생 빠져나와 생존할 수만 있어도 큰 행운이야.'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타인을 '돕겠다'던 내 마음은 큰 오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타인을 돕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쓰며 깨달았다.


누군가를 바로 잡고,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처방전을 적어주듯 학대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쓸 때는 몰랐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꺼내 들여다 보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찌릿하게 뼛속까지 욱신 거리는 상처를 매만지며 깨달았다. 그 속에서 여전히 다 울어내지 못한 나를 만나고, 여전히 다 포효하지 못한 분노와 손 잡으면서 비로소 알았다.


나는 누군가를 도울 수 없다. 그저 나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내 상흔을 보며 누군가 회복을 꿈꾸고, 눈물자국으로 얼룩지고 어그러진 내 기록을 보며 누군가 꺼이꺼이 울어낼 수 있도록.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추악한 괴성이 아니라 어떤 노래보다도 아름다운 곡조임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저 내가 지나온 길이 여기 이렇게 있다고. 옳은 길과 그른 길이 아니라, 살아낸 길과 살아내지 못할 길이 있을 뿐이라고. 당신도, 당신의 선택을 해도 된다고.


그저 나를 보여주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 마음으로 공모전 응모글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걸 해도 되나? 나는 이걸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수시로 올라오는 의문 앞에 포기할까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마감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내 일정은 여전히 빡빡했다. 잠이 모자라 머리가 아팠고, 일단 자야지 하고는 누웠다. 그때였다.


메시지 알림이 뜬다.


"언니, 잘 지내요? 어제 꿈에 언니가 나왔어요"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이런 말로 안부를 묻는 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마음 깊이 신뢰하고 또 존경하는 지인이지만, 사적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만큼 격 없는 관계도 아니었다. 공모전 응모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포기하고 없던 일처럼 훌훌 털고 잊으려 했기 때문이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그만큼 컸다.


그분 꿈속에서 나는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알에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배우자의 학대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차분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좋았다며. 언니는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한다.




꿈이 뭐라고. 그렇게나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사실, 꿈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마음이어서 그랬을 테다. 내가 지나온 여정을 먼 곳에서도 가까이 마음으로 머물며 지켜봐 준 사람이 건네는 말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언니 잘하고 있어요. 잘한 결정이에요. 언니의 도전을 응원해요'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모처럼 편하게 잠들었다. 적게 자더라도 푹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모든 걱정을 베개 밑에 넣어두고 오롯이 잠을 향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엔진을 갈아 끼운 자동차처럼 힘을 주지 않고도 시원하게 달렸다. 글을 완성하고. 기획안을 완성했다.


그렇게 나의 무거운 고철 덩어리를 내려놓고 갈아 끼운 엔진으로 지구별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꿈에서 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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