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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떨어진 핵폭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by 맵다 쓰다

첫아이가 네 살 때쯤 이였다.

내가 빨래를 널고 있으면 아이는 옆에 와서 안 도와주는 게 나은 수준으로 곧잘 도와주곤 했다.

서너 개쯤 널고 나서 재미가 없었는지 긴 끈과 토끼 인형을 가지고 와서 어부바를 시켜달란다.


"우리 쑥이, 나중에 커서 아기 낳으면 잘 업어주겠네"


끈을 묶으며 이런 말을 하는데 울상을 지으며 질색을 하는 것이다.

"으앙~ 아기 낳기 싫어!"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나오는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다.


"아기 낳으면 나도 맨날 설거지하고 빨래 널어야 하잖아. 나 설거지 못한다 말이야..."


어느 만화에 대사 없이 머리 위로 새가 빙빙 도는 장면 같았다.

순간 머리가 먹통이 되고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아무 말을 못 하고 서 있었다.


아이 눈에 엄마는 매일 밥 주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사람으로 입력이 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세월의 시간만큼 우리 엄마세대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봤던 80년대 엄마의 모습과 80년대생인 내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다른 거라면 우리네 엄마들은 당연한 듯 감내했고 (비록, 불만이 있었을지라도 사회적 통념이 그랬으니까)

지금 우리는 억울하고 충격적인 게 다르다고나 할까?


아이가 아기 낳은 삶을 엄마의 모습을 통해서 짐작해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전하는 언어적 의사소통 말고 비언어적 의사소통도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흡수되는 것들..


물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게 가치 없는 일이라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가사노동이고 인정받아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죽지 못해 해내는 수준이었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라 미루고 미뤘다.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살림을 즐기는 게 아니라 먹어야 하니 음식을 했고 어쩔 수 없이 청소를 했다.

하면서도 '난 지금 뭐하는 거지?'스스로 못마땅하고 불만에 차있었다.

그래서 더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가 만들어준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2014년에 태어난 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 무엇을 보여줘야 할것이가...


삼십 대 후반 엄마 사춘기의 촉발은 거기서부터였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좋은 내가 되어야겠구나.



"엄마처럼 아기 낳고 멋지게 살래요!"를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내 딸에게 무슨 꿈을 꾸며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엄마처럼 행복하게 뭐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그리면서 나는 꿈을 찾아나갔다.


변하지 않는 조건. 내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자리에서 뭔가를 하는 게 가능할까?

' NO'의 안경을 쓰고 볼 때 모두 핑계이던 것들을 "yes'의 시선으로 바꾸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라면 돈 없이도 배우는 걸 찾으면 되고


아이 때문에 시간이 낼 수 없다면 아이 재우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면 됐다.


'이제 와서 무슨 새로운 일.. 하는 마음은 지금이라도 도전해볼 수 있어 다행이다' 고쳐먹었다.

이렇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니 내 인생에 처음으로 변화가 찾아왔다.


내 안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던 먼지 묻은 작가의 꿈도 찾아냈고 새로운 사람들도 시공간을 초월해서 만나 마음을 나누고 꿈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남들은 모르는 금광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입만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살았구나 후회도 되었다.

이런 삶을 20대에 더 빨리 알았다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알았더라도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더 잘살고 싶어 졌으니까..




얼마 전에 아이가 큰일 났다고 하면서 말을 꺼냈다.

"엄마 난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하고 가수가 되고 싶기도 하고 초콜릿 만드는 사람도 되고 싶은데 어떡하지?"

인생 최고의 고뇌에 빠진 얼굴이다.



"그럼 다 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꼬마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 넌 일단 화가가 돼서 네가 입고 싶은 옷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옷을 무대의상으로 입고 노래를 부르면서 가수가 되면 되는 거지!"


"음...... 그래도 다 할 수 있을까?"

의심을 완벽하게 해소하지 못한 아이가 이어 말했다.


"그럼 초콜릿은?"

"그리고 초콜릿은 만들어서 니 팬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되는 거지~ 못하는 게 어딨어?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정말? 하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에게 쐐기를 박았다.


"자. 들어봐. 엄마는 엄마도 하면서 병원에서 일도 하지, 너희 옷도 만들어주지(취미로 옷을 만들어준다), 음식도 얼마나 잘한다고 엄마도 알고 보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하고 있지? 그리고 엄마는 작가도 될 거야. 책을 쓰는 작가 말이야. 그래서 매일 밤 엄마가 공부하는 거야. 지금 엄마도 다 하고 있지? 그렇지?"


"아.. 맞네"

하면서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나의 현란한 말솜씨 덕에 아이가 설득당했을까? 아직 어려서 설득을 당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담은 말이었고 달라진 내 모습과 에너지를 아이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작도 아이였고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도 아이다.


나이나 환경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진짜 하고 싶다면 어떤 형태로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마흔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떤 수천만 원짜리 자기 계발, 동기부여 프로그램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핵폭탄급 동기부여를 공짜로 매일 받고 있다.


'너희때문이라도 엄마는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육아는 아이가 아닌 나를 키우는 행위라고 말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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