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묻지 않았던 그 말을 쓸 때

by 맵다 쓰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잘 사는 것과 잘 쓰는 게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글쓰기에 빠져보면 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순간을 충실하게 살 수록 쓸 말이 나온다. 일상에서의 의미도 생겨난다.

잘 쓰고 싶다면 충실하게 살고, 잘 살고 싶다면 필연적으로 써야 한다. 못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모두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도 글을 써도 될까요?”


마흔이 돼서야 작가가 된 나에게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던 4년 전에 내가 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묻는 사람의 의도가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허락의 의미이다.


글을 쓸 줄 모르는데 써도 되는지, 특수한 생명체쯤으로 여기는 작. 가. 를 내가 되어도 괜찮을지 같은 마음이 담겨있다. 잘 읽고 잘 쓰는 삶을 살아보려고 애쓰다 보니 그 질문의 숨은 속내를 알 것 같다.

글을 못 쓰겠다거나 쓸 말이 없어서 물었던 게 아니다.

'무엇을 써야 하지?' 는 '나는 나에게 무엇을 묻고 답해야 하지?'였다.

“제가 글을 써도 될까요?”는 내 생각을 써 내려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불안함이다.


똑같이 경험했는데 그때 내 기분이 그랬던 이유와 닮은 글을 읽을 때, 나는 발견하지 못한 의미, 규정하지 못했던 희미한 심리상태를 그 작가는 어떻게 그렇게 표현하는지 감탄한다.

“참 재미있었다”,”너무 화가 났다”,”잘해야겠다” 이런 몇 마디만으로 한다는 걸 자각하면 자신에게 많은 것을 묻지 않고, 대충으로 얼버무리며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던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이다.

[의사표현]의 의사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고, 표현은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내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어울려 살기 위해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나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진짜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자기 것인데 나의 생각에 다가가는 것을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한다.


해일은 해저의 지진, 해저 화산 폭발, 단층 운동 같은 급격한 지각변동 등으로 발생하는 파장 같은 다양한 이유로 생긴다. 원인이 없는 해일이 생길 리 없는데 요동치는 감정의 원인은 덮어둔다. 왜 이유 없이 짜증이 나지. 이 상황이 유난히 불편하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파도가 치는구나, 바람이 부는구나, 정도만 인식하고 살아가면서 내 안의 어떤 단층들이 서로 부딪혔는지, 왜 마음의 지각이 흔들렸는지를 찾는 법을 잃어버린다.


해저에서 시작되는 파고(波高)는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다. 작은 지각변동으로 바닷물이 상하로 진동되다가 수심이 얕아지는 해안 근처가 되면 파고가 커지면서 영향력이 커진다.

지나쳤던 사소한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 가져보지 못한 장난감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장난감을 수집하는 하게 된 것처럼 이유 없는 만들어진 나는 없다.

글쓰기는 나의 심해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파도로 만들어진 이유를 납득할만한 언어로 적어보는 과정이다.


쓰면서 감정의 진원지를 찾아내는 마음의 탐사이다.

100명이든 1000명이든 저마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떡볶이나 딸기를 좋아해요"라고 명료하게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마음의 진원지를 찾아내고, 나의 언어로 만들어내서 타인의 삶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이 일을 사랑한다.

이 브런치 북은 쓰지 못하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고,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나의 르포르타주이다.

작가들의 그것을 훔쳐보고 탐내본다. 쓰는 사람은 어떻게 감정과 마음을 움직여 우리의 세상을 움직이는지 따라가 볼 작정이다.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만의 언어'를 찾기 위한 '마음의 탐사'를 떠난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복합장애는 가졌던 헬렌 켈러가 'water'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마음의 윤곽을 알아내고 문자로 옮겨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물펌프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처럼 이제 글로 나를 쏟아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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