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달려라, 아비》,<스카이 콩콩>

평범함의 특별함

by 문영

스카이 콩콩. 어감이 귀엽다. 나도 어렸을 적에 스카이 콩콩을 좋아했었다. 파란색 티를 입고 파란색 스카이 콩콩을 타던 기억은 진짜 내 기억일까, 사진으로 재구성된 기억일까. 전자든 후자든 내가 탄 것은 맞다. 나는 신나게 콩. 콩. 콩. 뛰었더랬다.




김애란의 <스카이 콩콩>은 평범한 가정이 나온다. 아니, 엄마가 없는 집이니 그리 평범하지는 않다. 남자 셋이, 부유하지 않게, 사는 풍경. 역시 작가 특유의 덤덤함이 잘 묻어난다.

문득, 스카이 콩콩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무동력기가 상징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궁금했다. 의외로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유년시절을 끌어왔다.




고무동력비행기는 오빠가 잘 만들었었다. 노란 팬티 고무줄로 동여맨 비행기. 꽤 잘 날았고 나는 오빠가 날리는 걸 보는 걸 좋아했다. 4월, 과학의 달은 오빠에게 신나는 달이고 내게는 지루하고 어려운 달이었다.




작품 속 형도 소질은 없지만 과학에 진심이었다. 재능이 없다 하여 무시당할 필요는 없는데, 동생은 형을 무시하는 모습이다. 진짜 과학 공부를 하고 있는 사촌형은 존중하고, 정말 라디오를 고쳐놨던 형은 무시한다. 형은 우연찮게 상 하나 받아서 아버지에게 기대감을 주어 텔레비전을 없앤 존재이다. 아이들에게 티브이가 얼마나 소중했을까. 이제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펑펑 울었다는 에피소드가 정겨웠다.




나도 어렸을 적 우리 집 브라운관 티브이의 최후를 기억한다. 고물 티브이가, 때려야 나오던 티브이가 어느 날 갑자기, 생생한 화면을 전송하더니 이에 사망해 버렸다. 오늘따라 너무 잘 나온다고 신나서 시청하던 엄마와 나, 오빠는 크게 놀랐고 같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한편에는 이제 티브이 못 사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이 있었다. 나는 우천 시로 이사 가고 싶었을 정도로 만화와 어린이 드라마 광팬이었다. 당시 신문 티브이 프로그램 편성표에는 프로야구 중계가 예정되어 있었고, 당구장 표시로 우천 시에는 만화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우천 시의 뜻을 몰랐던 나는, 엄마에게 우천 시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프로야구 시즌에도 만화를 볼 수 있는 지역인 줄만 알았다.




작품 속 형은 아버지 전파상의 텔레비전 화면을 부수고 철없는 나는 아버지 꾐에 넘어가 거짓 자백을 하여 형 대신 엄청 혼나고 만다. 형은 끝끝내 자신이 그랬다는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내내 안방 앞을 맴돌 뿐이었다.

정말 당찬 녀석들이다. 나는 부술 생각도 거짓 자백도 꿈도 못 꿀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나 다르구나.

형은 결국 잠시 가출도 한다. 아버지는 형이 돌아올 거라며 깜빡이는 가로등을 손수 고치려는 시도를 하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작품 속 '나'의 마음도 나와 같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빠르게 포기하고 돌아섰고 집에 와 보니 형이 와 있었다.

부모의 촉은 틀리지 않다. 형은 의연하게 카세트테이프를 사 왔노라 했고 셋은 언젠지도 모르게 형이 고쳐 놓은 카세트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바흐의 클래식을.


가족이라서 그런 아무렇지 않음이 가능한 것이다. 가족이라서 평화롭게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스카이 콩콩은 유년 시절 추억이고 고무동력비행기는 형의 어린 시절 꿈을 상징한다. 결국 형은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세상은 그만큼 어렵고 차다. 그래도 형은 괜찮다. 언제든 돌아가서 바흐를 들으면 된다. 품어주고 함께 들어주는 가족이 있다. 이 평범한 가족은 얼마나 특별한가.




생각해 보면 나의 유년 시절도 괜찮았다. 아버지는 본인의 평범함에 자부심이 있으셨다.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자랑스러워하셨었다. 나는 그게 허세로 보여 못마땅했었다. 당연한 일상을 왜 저렇게 자랑스러워하시고 내세우시나. 별로였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 알았다. 그 당연한 일상을 위해 부모님이 어떤 희생을 하셨는지. 평범함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김애란도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덤덤하게 그려내며 특별히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마음이 괜히 몽글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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